2025년 05월 24일 늦잠 자고 여유로운 일상
4월쯤이었나?
아들이 다녔던 유치원에서 아들이 직접 심었다는 나팔꽃 새싹을 하나 받아왔다.
유치원 선생님의 의도는 분명 아들이 물 주고 관찰하라는 거였지만,
유치원 보내본 엄마들은 다 안다.
결국 그 모든 건 엄마 몫이라는 걸.
사실 나, 테라리움 1급 자격증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식물을 좋아하진 않는다.
내겐 식물은 대답도 없고 물만 먹는 그냥 어떤 생물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죽여낸 식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한창 일할 땐 식물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다.
좀 키워보겠다 싶으면 정신없이 바쁜 사이에 물 주는 걸 놓쳐
이미 시들시들해진 상태로 발견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서 이번 나팔꽃도, 처음엔 좀 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백수라서 시간이 많아서일까?
베란다 창가에 나팔꽃을 놓고, 흙을 직접 만지며 상태를 살피고,
건조한 날엔 물을 주고, 습하면 그냥 두었다.
예전엔 꽃을 살 때마다 꼭 물어봤다.
"언제 물 줘요?"
그러면 꽃집 사장님들은 심드렁하게 대답하곤 했다.
"2~3일에 한 번이요."
나는 정말 착하게도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흙이 마른지, 식물의 상태는 어떤지 전혀 신경 안 쓰고 그냥 2~3일에 한 번, 기계처럼 물을 줬다.
결과는… 뭐, 다들 예상하겠지만 처참한 살해 현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백수인 나는 흙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흙을 손끝으로 만지며 건조한지 아닌지 직접 확인하고, 수분이 없을 때 조심스럽게 물을 줬다.
그랬더니 어느 날, 나팔꽃 새싹의 이파리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쑥쑥 위로 자라기 시작했다.
덩굴도 생기고, 꽃봉오리도 맺혔다. 그리고 며칠 뒤, 진짜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우와, 이래서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구나.”
성장이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청포색 나팔꽃은 아침이면 피고,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간다.
접히는 모습이 꼭 쭈그렁 할머니 같기도 했다.
그러다 다음 날이면 또 피고, 또 접고…
그 반복이 자연스러워서 심지어 시드는 모습마저 아름다웠다.
오늘 아침, 나팔꽃을 다시 봤다.
그런데 이번엔 청포색이 아니라 진분홍 나팔꽃이 하나가 꿋꿋하게 하늘을 향해 피어 있었다.
‘아… 너, 알고 보니 청포색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나팔꽃이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나도 다른 색을 낼 수 있어요."
한 생명체가 여러 색을 품고 있다는 걸 그 조그만한 꽃이 나에게 알려줬다.
그 순간, 나팔꽃은 더 이상 그냥 식물이 아니었다.
삶의 리듬, 감정의 변화, 나라는 사람의 속도를 보여주는 친구 같았다.
내가 백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 꽃의 변화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을 거다.
고맙다, 백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