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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Ju Mar 18. 2022

유학 일기 00. 4년의 공백이 막을 내렸다

나는 뒤처진 적이 없다


      학교를 포함해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로 보낸 시간이 무려 4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멀쩡히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고, 그다음 해에는 검정고시를 쳤다. 고등학교 자퇴생이 된 지 정확히 4년 하고도 한 달이 더 지났을 때, 나는 독일에 있는 한 음악대학교의 신입생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둘 때만 해도, 아니, 대학에 입학하기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학사과정부터 독일에서 공부할 계획은 없었다. 한국 대학에서 바이올린 전공으로 학사를 지낸 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석사과정을 밟는 것이 내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서있는 곳은 독일의 ‘자브뤼켄’이라는 작은 도시 한복판이었다. 인생을 논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었지만, 그때까지 내 인생은 계획한 그대로 흘러간 법이 없었다.


      4년 만에 학교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은데 거기다 독일에 있는 대학이라니, 미드에서 보던 해외 대학 캠퍼스의 모습은 더 이상 로망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래서 설렜냐고? 천만에. 타고난 성질이 무심한 탓에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이다. 웃음이 많은 동시에 화도 많아 헤헤거리며 웃다가도 곧 욱하고는 하니 기분이 좋고 나쁨의 격차는 꽤 있다. 하지만 본래 행복과 불행 사이의 편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오랜 입시 기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입학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학교에 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설렘은 크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다시 학교에 간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것들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4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그동안 방황하며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연습하고 공부하며 다른 입시생이나 대학생들과 똑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랬기에 주변 친구들이 먼저 학사를 시작했다고 해서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현재의 나에게 당장 허울만 좋은 간판이 붙는다고 해서 내실이 저절로 다져지는 건 아니거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에 별 볼일 없는 간판을 가지고 있어도, 혹은 나를 설명할 무언가가 아예 없다고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금 당장의 내공’은 변하지 않는다. ‘뒤처졌다’라는 말은, 남들보다 속도가 느릴 때가 아니라, 발전 없이 그대로 머물러있을 때 쓰는 말이라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18년 2월 초에 합격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학기가 시작하는 달인 4월까지 약 한 달 반의 공백이 있었다. 무엇을 했냐고? 내가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기간 동안 살던 곳은 ‘뒤셀도르프’라는 독일 서쪽에 있는 도시다. 뒤셀도르프는 한국인들의 성지로 불린다. 독일에 있는 한인마트 중 가장 크다는 ‘하나로마트’가 있고, 한식집과 한인 카페가 도시 전체에 널려있다. 맛은 또 어떻고? 뒤셀도르프의 국물 닭발 맛은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좋다. 약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뒤셀도르프에서 지내며 한식집에 자주 들렀던 건 아니다. 원래 손에 쉽게 닿는 곳에 있는 건 잘 찾지 않는 게 인간의 심리니까. 하지만 이것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뒤셀도르프를 떠나기 전까지는 비싼 국물 닭발과 돼지껍데기를 꽤 자주 사 먹었다.


      잊지 못할 국물 닭발과 돼지껍데기를 뒤로한 채 2018년 3월 15일, 나는 자브뤼켄의 학생 기숙사로 완전히 이사했다. 이 도시는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곳이었다. 학교에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지, 수강신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며 얼마나 어려울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뒤셀도르프에 나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 같이 입시 준비를 하던 친구들이 있었다면, 자브뤼켄에는 오로지 나 혼자였다. 뒤셀도르프를 떠난 이상, 그곳에 계신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것들은 모두 맛보기였던 셈이다. 앞으로는 모든 게 온전히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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