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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Ju Mar 21. 2022

유학 일기 01. 막내가 된 왕언니

내가 '애기'라니...



      독일 대학 시스템이 얼마나 아날로그적인지 그 당시의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별거 아닌데, 그때의 나는 괜히 수강신청을 하지 못해서 첫 학기부터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 학기를 날리게 될까 발을 동동 굴렀다. 학교에 물어봐도 게시판에 다 붙어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더라. 어떻게 하는지 좀 알려주지,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나는 아무래도 같은 한국인 학생에게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독일인을 잡고 물어봤자 겨우 B1 수준밖에 안 되는 내가 원어민의 설명을 이해할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전공 교수님께 와츠앱(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 서비스)으로 혹시 한국인 학생 연락처를 받을 수 있을지 여쭸다. 전화로 했다가는 교수님의 속도 빠른 말을 못 알아들을 게 뻔했기 때문에 꼭 문자로 쳐야 했다. 그렇게 같은 클래스인 걸로 보이는 한 언니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언니는 나보다 나이가 일곱 살이나 더 많았다.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나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문제는 그 언니가 ‘최고연주자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최고연주자 과정은 석사 다음 과정이다. 하지만 박사과정과는 다르다. 언니는 한국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석사는 다른 학교에서 공부하셨기에(학교마다 시스템 차이가 크단다) 수강신청에 관련된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친절하신 언니는 미안해하며 같은 학사과정에 재학 중인 다른 선배의 연락처를 넘겨주셨다.


      “그럼 내가 K의 연락처를 줄게요. K는 주 씨보다 1년 선배고 우리 학교 한국인 중에서 가장 어려요.”


      그러더니 K선배와 나의 나이차를 세기 시작했다.


      “K가 96년생이던가? 주 씨가 97년생이라 했죠? 세상에, 우리 학교에 K보다 어린 ‘애기'가 들어왔어!”


      당시의 나는 한국 나이 22살로, 한국 대학에서였다면 슬슬 ‘화석으로 불리기 시작할 나이였다. 3 되면서부터는 ‘언니소리가 익숙했다. 주변에서는 항상 내가 제일 언니였고, 당시  친구들 대부분은 나보다 한두 살씩 어렸다. 그랬던 내가 ‘애기소리를 듣다니, 옆에서 동생들이 들었더라면 자지러지게 웃었을 지도 모른. '애기' 불리는 게 재밌고 신선했지만, 우리 학교의 모든 한국인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 학교 학사과정에는 한국인들이 새로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 4년이 지난 지금, 내 밑으로 몇몇 들어오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막내라인에 속하니 말 다했다. 그렇다고 한국인 수가 적은 건 아니다. 독일에서는 어느 학교에서나 한국인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건 우리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크지 않은 학교에서 공부하고있는 한국인들의 수가 무려 쉰이나 된다. 다만,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한국인들이 석사와 최고연주자 과정에 포진해있었기 때문에 평균 연령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나 밑으로 나보다 어린 친구 둘이 들어올 때까지(그리고 그 둘은 아직까지도 막내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친구가 K보다 어리대’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K선배는 나 덕분에 막내를 탈출했다면서 좋아했다.


      그렇게 오랜 왕언니 생활이 지나가고 ‘늙은’ 신입생이자 막내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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