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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Aug 24. 2022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던 좋은 사람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20대 초의 나에게 돌아가 딱 하나의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하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항상 '잘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잘하려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한 적이 꽤나 많았다. 특히 언어적으로는 꼭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내고 말겠다는 쓸데없는 욕심 때문에 끝끝내 속으로 삼켜버린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감히 헤아려 볼 수도 없다.


틀린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을까 봐, 그리고 그게 혹여나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봐 자꾸 말을 삼키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의견을, 내 주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감도 낮아졌고 나중에는 자존감이 바닥을 쳐 작은 거 하나를 생각할 때도 '이게 내 생각이 맞긴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는 학창 시절에 반장도, 전교회장도 할 정도로 나서는 걸 좋아하고 활달한 성격이었는데 미국에서 생활하며 어쩐지 극도로 내향적이고 뒤에 숨어있길 좋아하는 성격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큰 맘을 먹고 평소 내게 잘해주던 앤더슨 교수님을 찾아갔다. 앤더슨 교수님은 백인 여성이었으며 회계학 교수지만 '사람들'의 내면을 살피는 걸 좋아해 리더십 및 HR 관련 강의도 맡고 계셨다.


"오늘은 전공 관련해서 얘기할 게 있어서 찾아온 게 아니라, 주눅 든 동양인 학생으로서 찾아왔어요. 저는 원래 나서서 뭘 하는 걸 좋아하는데 여기선 그렇게 하질 못하겠어요. 그룹 프로젝트를 할 때도 성격상 제가 주도적으로 리드를 하고 싶은데 혹시라도 팀원들이 '얘가 우리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까 봐 겁나요. '외국인인 나랑 팀이 되는 걸 싫어할 것 같은데'라는 피해의식도 생기고요. 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영어가 제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한번 핸디캡으로 느껴져 버리니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점점 '내가 이 나라에서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취업은 할 수 있을까'하며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

"우선 네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 정말 놀랐어. 나는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보며 항상 너랑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거든. 나는 책도, 뉴스도 영어로만 읽을 수 있어. 네가 내 앞에서 그 어떤 쉬운 한국어를 해도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지. 아마 이런 표정일 거야(정말 멍- 한 표정을 지으셨다). 하지만 너는 지금 이렇게 나와 대화도 할 수 있고 이 대화가 끝나면 너의 한국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또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떠들 수 있겠지. 그리고 다음날은 아무렇지 않게 교실에 앉아 영어로 된 시험지를 보며 문제를 풀 수도 있을 거야. 상황에 따라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며 네가 원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난 너무 부러운데 너한텐 그게 널 작아지게 하는 요소이구나. 관점을 조금만 틀어보면 어때?"


그 후로도 학교에 다니며, 그리고 직장에 다니며 비록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자신 있게 자기표현을 하는 수많은 외국인 친구들과 동료들을 보며 언어적 완벽주의를 꽤나 많이 내려놓고 난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맞는 말이지~' 하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지만, 이 말을 들은 직후에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스스로 나를 더 작게 만드는 굴레에 빠져 교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이 대화 이후로 몇 날 며칠을 혼자 더 고민했었고, 생각 정리가 되고 나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좀 더 집중해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가는 데에 더 힘을 썼던 것 같다.


이건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내가 작아지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늘 주위에는 나의 자존감을 붙잡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끝끝내 완벽주의를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해 한국에서처럼 온전한 나로 살다 올 수는 없었지만 나의 강점을 더 눈여겨 봐주려 했던 그들 덕분에 학교도 무사히 마치고 첫 직장생활도 무탈히 마무리하고 귀국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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