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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May 22. 2022

이런 학교가 있다구요? 멘붕의 연속인 나날들

성공할뻔한 하이틴 덕후

"나도 세레나나 블레어처럼 말하고 싶어"


어렸을 적, 하이틴 드라마나 영화에 한 번쯤 빠져본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가십걸, 90210, 글리, 하이스쿨 뮤지컬,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의 하이틴 감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자유분방하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교내를 돌아다니고, 점심시간엔 널찍한 카페테리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프롬(prom: 졸업파티)에 가는 장면들은 어릴 적부터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괜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던 내 마음에 이따금씩 불을 지피곤 했다.


중국 로컬학교, 그것도 기숙학교에서 1년간 중국인 친구들이랑만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나머지 중국어 공부는 국제학교로 옮긴 후 방과 후에 해도 충분할 것만 같은 괜한 자신감이 생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냥 하루빨리 나의 로망을 실현시키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내가 살던 광저우에는 미국계, 영국계, 캐나다계 국제학교가 있었는데, 그렇게 꿈꾸던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열심히 시험을 준비한 끝에 나는 마침내 미국계 국제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입학 첫날부터 실감이 안 났다.

광저우에 외국인이 이렇게 많았던가?


학교 캠퍼스는 너무나도 크고 화려해서 마치 대학에 온 것 같았고, 그때까지 중국 외에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던 나는 인생에서 그렇게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본 게 그날이 처음이었다.


입이 떡 벌어진 채 학교 구석구석을 구경하다가 안내받은 교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웬걸, 정말 드라마에서만 보던 교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체육관, 식당, 도서관 모두 마찬가지였다.


여긴 중국 속의 작은 미국이구나
© copyright: aisgz.org

Dreams come true.

마침내 나의 로망이 실현될 것만 같았다.  




겉모습만 한국과 다른 게 아니었다. 교육 방식은 어쩜 그리도 다른지. 첫날, 첫 수업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열댓 명의 학생들이 큰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얼마 전까지 중국어만 듣다가 이제는 귀에 들리는 언어가 영어로 바뀌었다. 회화는 안 되었지만, 한국에서 꾸준히 영어 학원을 다녔던 덕분인지 중국 학교에 입학했던 첫날과는 매우 다르게 옆에서 친구들이 말을 할 때 단어 몇 개 정도는 띄엄띄엄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법과 독해, 듣기 평가 위주로만 영어 공부를 했던 내가 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즐거웠던 것도 잠시. 또다시 외로워지는 기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이니셜로 시작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보여줄 수 있는 형용사 하나를 골라 단어가 뭔지 얘기하고 그 단어가 자기를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음... 응...?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그 기분을 바로 그날, 열여섯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느껴버렸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을 정도로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완벽하게 적응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교과서나 문제집을 달달 외우는 게 특기였고, 그런 이유로 객관식 시험에 특화되어있는 그런 학생이었다. 국제학교는 하루아침에 그런 나의 능력을 철저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수업 방식이 여태 내가 경험해 온 방식들과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 copyright: aisgz.org

가장 멘붕이었던 건, 한 번 시작하면 두 시간 동안이나 이어지는 체육시간이었다. 미국 사회가 스포츠에 진심이라고는 익히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수행평가가 있을 때만 뜀틀, 농구대 앞에서 깔짝깔짝 대던 내겐 축구, 하키, 야구 등등 수많은 종목에 진심으로 참여해야 하는 체육시간이 처음에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영어 수업, 우리나라로 치면 국어 시간에는 교과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학기 내내 고전만 읽었다. 네 권 정도의 책을 같이 읽고 마지막에는 조별로 한 권을 정해 연극을 하는 게 기말 프로젝트였다. 체육만큼 음악에도 어찌나 진심인지, 일주일에 네 번은 플룻을 불었던 것 같다. 과학시간엔 무언가 개념을 암기한다기보다는 항상 lab에서 수업을 했다. 현미경과 실험노트를 늘 달고 살았다.


이런 학교가 있다니!

 학교-학원-학교-학원을 반복하는 삶에만 익숙하던 내게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렇게나 다른 교육 환경에 적응하려면 내가 그동안 공부해왔던 방식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맞고 틀리고가 아닌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평가된다는 것에 적응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오히려 시험 점수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니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새로운 지식을 쌓는다는 사실 자체에 의의를 두고 수업 하나하나를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꽤나 고통스러웠던 체육 시간도 나중에는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던 때처럼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변화에 하나하나 적응해가며 본격적으로 성공한 하이틴 덕후의 삶을 살아보려는 내게 그간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쳤다. 오매불망 바라보고 있던 나의 꿈의 나라 미국에서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며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져버린 것이다.


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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