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식년이라면서요...
2022년 1월 19일,
그러니까 오늘로부터 만 141일 전, 인생 세 번째 퇴사를 했다.
그 전 두 번의 퇴사가 환승 이직을 위한 이별이었다면, 이번 세 번째 퇴사는 결이 달랐다.
휴직하면 제대로 못 쉴 것 같아서요
쉬고 싶으면 몇 달 휴직을 하면 되지 왜 굳이 퇴사를 해야 하냐는 상무님의 질문에 했던 대답.
2018년 9월,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정말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며 3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완벽한 워커홀릭이었던 나의 시간은 마치 누군가 시계태엽을 계속 앞으로 감아놓는 것 마냥 빠르게 흘러갔고, 이렇게 회사 일만 하다 30대를 맞을 것만 같은 불안함에 스물아홉의 12월, 나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선물하자 마음먹었다. 잠깐 트랙에서 내려와 숨을 고르며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재점검해보고 나의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흥미 부자인 나는 평소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 퇴사하기도 전에 이미 퇴사 버킷리스트를 꽉 채워놨었는데, 이걸 다하려면 최소 1년은 필요할 것 같아 휴직이 아닌 퇴사를 해야 한다고 설명드렸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으면 쉬는 내내 계속 마음 한켠이 불편할 것 같다고, 흰 도화지 같은 나의 서른에 1년간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아무도 모르는데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답을 정해놓고 시작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퇴사하고 네 달이 지난 지금,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하며, 그리고 가끔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통장 잔고를 한 번씩 채워주기 위해 이런저런 프로젝트들을 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제발 그냥 좀 쉬어
그리고 어제,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그냥 좀 쉬면 안 되겠냐 물었다. 친구들도 매일 왜 퇴사하고 더 바쁘냐며 언제 쉬냐고 묻는다.
하지만,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퇴사하며 2022년을 '나의 안식년'이라 이름 붙여줬지만, 애초에 마냥 푹 쉬기만 하는 한 해를 원한 건 아니었다. 성격상 나는 단 하루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늘 뭔가 할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다.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는 나를 위해 지은 제목이 아닐까 싶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게 쉼이다.
읽고, 쓰고, 적당히 일하고-
온전히 내가 통제하며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울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쉼인 것 같다.
전생에 일 못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퇴사하고도 어찌저찌 프로젝트성 일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이마저도 시간적/공간적 자유가 있다 보니, 쉬엄쉬엄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그게 뭐가 됐든 무언가를 계속 하며 바삐 지내는 삶을 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네 달 동안 꽤 많은 퇴사 버킷리스트들을 달성했다 생각했는데, 다양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리스트에서 지워지는 수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르게, 자꾸만 새로 해보고 싶은 것들이 더 생겨난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것들을 클리어하기 위해 또 바삐 지내고, 거기서 또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어쩔 수 없이 나의 자발적 백수의 삶에 연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자꾸만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 더 늦기 전에 나의 퇴사 일지, 그러니까 이 소중한 독립 여행기를 까먹기 전에 그때그때 기록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나의 퇴사 버킷리스트를 한 가지 더 클리어해본다 :: 브런치에 퇴사일기 작성하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