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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Jul 22. 2022

어딜 가도 막내

경험 자산이 풍부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93년에도 사람이 태어났구나


지금 들으면 굉장히 웃긴 말이지만 어딜 가도 저 말을 듣던 때가 있었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꽤나 다양한 활동을 했었다.


매주 일요일엔 라파엘클리닉이라는 의료 봉사단체에서 수십 명의 대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했고,

수능 공부를 하기 위해 잠깐이지만 재수학원도 다녀보고,

미국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해 토플 및 SAT 학원도 열심히 다녔으며,

해커스어학원에서 조교 및 에세이 첨삭 아르바이트도 하루 세탕씩 뛰어보고,

중국에 한 번 더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참 다양한 집단에 속해봤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어떤 집단에서도 나는 막내였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질 않으니 집에서만 언니 소리를 듣지 밖에서는 늘 영락없는 어린 동생이었다.


라파엘클리닉에는 25~35살 사이 언니 오빠들이 다양하게 있었고,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해커스어학원에서 같이 조교를 하던 언니 오빠들도 대부분 23~28살 정도였기 때문에 열여덟, 열아홉의 나는 그들 눈에는 정말 어리게 보였을 것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 대학도 안 다녀봤고, 술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창 어린 내가 대학생 언니, 오빠들과 완벽히 어울려 노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봉사 끝나고도, 아르바이트 끝나고도 밥만 먹고 먼저 일어나야 했기에 마음 한구석엔 늘 찝찝한 마음이 있었다). 나중에 SAT 학원에서 드디어 또래 친구들을 만나긴 했지만 그전엔 한국에 또래라곤 중학교 때 친구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한창 수능 공부를 할 때에는 외롭다는 생각도 꽤 자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막내로 살며 좋았던 점은, 다양한 삶의 방식들에 좀 더 빨리 노출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보다 3-4년, 많게는 6-8년 더 산 언니, 오빠들이 항상 얘기하는 고민들은 내가 곧 겪게 될 인생고민들이었기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태세를 갖출 수 있었고, 각자만의 방법들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클리셰이긴 하지만 삶에 정답은 없다는 것도 일찍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 하나 틀려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보다 몇 년 치의 경험 자산을 더 쌓은 이들의 진심 어린 조언들이 늘 함께했기에 내 왼쪽 손엔 늘 방패가 들려있는 기분이었다. 주변에 레퍼런스가 되어주는 삶이 많아지면 살아가는 데 좀 더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3년 동안 여기저기서 어린 나에게 먼저 내밀어 준 따뜻한 관심과 손길들 덕분에, 나도 대학에 들어가서, 그리고 직장에 들어가서 멘토링을 진심으로 즐겨할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몇 발짝 앞서 있는 사람들이 나의 방향키가 너무 틀어지지 않게 한 번씩 잡아만 줘도 얼마나 수월하게 항해할 수 있는지 3년 내내 느꼈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막내로서 받았던 챙김과 보살핌들을 고스란히 되돌려줄 수 있는 언니와 선배가 되고 싶었달까. 


생각보다 일찍 사회로 나와 친구들과 야자 한 번 못해보고, 입시 준비를 하며 힘든 시간들을 함께 보낸 돈독한 고교시절 친구들이 없다는 게 종종 아쉬울 때도 있지만, 덕분에 삶을 살아가는 방식들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그때 학교를 그만둔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결국 한국에서도 이방인처럼 살았지만, 그 삶이 영 싫지는 않았나 보다.

다시 또 이방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 걸 보면.


또 제 발로 마이너리티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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