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만난 나의 동기의 첫인상은 기억에 가져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쎄했다고 느껴서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사람을 싫어하는 게 느껴졌고, 뾰족한 말투와 개인행동을 좋아했다. 마치 날카롭고 예민한 새끼고양이의 느낌이었다. '귀엽긴 한데, 제일 안 친해지고 싶다. 나랑은 안 맞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항상 내 생각대로 되지 않듯이 의외로 친해지는 단계에 오게 되었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증이 생겼고, 질문 폭격기가 되었다. 그중에 공통점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회에 믿음의 친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서로가 돌아서게 돼버렸다. 딱 '무엇 때문이다'라는 주제가 없고 모호하고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답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그림만 그려야 하는 상황에 오게 된 것이다.
물과 불(서로 너무 다르고 어렸다)
- 다름을 이해하려는 실천은 없고 말로만 하는 태도들
- 고집이 세고 서로가 지고 싶어 하지 않은 태도들
- 인정하지만 기분 나쁘다는 태도들
- 점점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알 수 없는 기류들
- 틀에서 벗어나게 되면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워하는 모습들
둘 다 감정소모 경험하는 걸 힘들어하는 타입이다. 근데 소모가 심해졌고, 많이 부딪히면서 마음속에 쌓아왔던 갈등들이 서로에게 회피라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어른들의 손절법
어느 날부터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겉으로는 외적손절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들키기는 싫고 예전처럼 거리를 좁혀오지는 않는,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려는 모습들이 눈에 보였다. 관계는 쌍방이라 느껴지는 그대로 내적손절감이 다가왔다. 어떤 예능에 예전에는 관계를 한순간에 확- 정리한다면 요즘 어른들의 손절법은 알게 모르게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달라진 태도를 느낀 것처럼 그 친구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관계 개선을 위해 둘 중에 한 명이라도붙잡고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어야 하는데 둘 다 눈치만 보다가 피했다. 그리고 관계를 이어가도 괜찮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함구와 정체된 행동들이 이어졌다.
탓의 결과
부딪혀보려 하지 않고, 둘 다 탓만 하다가 끝난 안타까운 상황이 왔다. 악의는 없으나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 둘의 모습에 어색한 공기만 흐른다. 그렇게 나의 병가로 인해 5개월간의 공백기를 가졌고 다시 만났을 땐 알 수 없는 어색함이 느껴졌다. 마치 전애인에게 느낄 법한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동성이 아닌 이성친구라서 그런 듯하다.
저장된 이름
친해지면서 서로 딱딱하게 이름으로 저장하지 않고 별명이나 옆에 동물 이모티콘을 붙여 저장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물이모티콘은 지워지고 원래의 이름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날이 왔다. 의도치 않게 근무하다가 그 친구가 저장한 이름을 보게 됐고, 그 친구도 내가 저장한 이름을 확인하게 됐다.
순간 예전에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누나, 만약에 우리 관계가 틀어지면 나를 소속/000으로 저장하겠지? 뭔가 마음이 아프네"
만약에의 대화는 현실이 되었고, 서로가 느낄 속상함은 예상치 못한 채 전개되었다. 그렇지만 다행이었다. 나 혼자만 멀어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다시 친구로 되돌아간다면, 더 이상의 노력은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그냥 크리스찬 우정으로만 남을 것이다.
한시적 기간제 친구
나는 그를 위해서 기도해보려고 한다. 우린 한 때의 한시적이자 기간제 친구였지만, 앞으로의 관계는 신께 온전히 맡기는 걸로 했다. 지금은 각자 묵묵히 제 할 일 하면 된다. 멀리서 지켜볼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친구의 마음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복을 빌어 줄 뿐이다.
네 흔적들이 나에게 많이 묻어나지 않아서 너에게 열었던 마음은 잘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함께한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즐거웠어 가끔 생각날 때 행복을 위해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