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한번쯤은 생각하지 않을까.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수십 년 전으로, 혹은 몇 년 전으로, 아니, 몇 개월 전으로, 지난 주로, 어쩌면 지금에 다다르기 20초 전으로.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거다. 누군가는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거고, 누구는 불행했던 시절을 다시 살고 싶을 테다. 이 둘의 소망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슷하다. 고치고 싶은 거다. 행복했던 시절을 지나와 그만큼 행복할 수 없는 지금을, 혹은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선택, 선택, 또 선택. 살아온 날만큼 두텁게 쌓여 엉겨 있는 이 선택들 중 무언가를 바꾼다면, 그랬다면 그때의 나는 어땠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런 과거로의 회귀본능을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내 가설은 틀릴 리가 없다. 우리가 평상시 즐기는 창작물만 봐도 알 수 있다. 소설이든, 희곡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웹소설이든, 웹툰이든, 불행한 나날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펼치는 내용의 작품을 수십 개, 정말 정말 적어도 한 개 정도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웹소설과 웹툰에서는 이런 소재가 너무나 인기 있는 나머지 하나의 장르로 분류된다. ‘회귀물’. 올해 상반기에 돌풍을 일으켰던 웹소설 기반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전형적인 회귀물이다. 믿었던 절친과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심지어 죽임당한 주인공이 10년 전으로 돌아가 자신이 기억하는 미래의 정보들을 토대로 복수하는 내용이다. 웹소설은 40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됐고, 드라마도 역대 tvN 월화드라마 평균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이런 것도 있다. 웹소설 플랫폼에 들어가서 목록을 훑으면 너나 나나 회귀한다. 웹소설은 크게 무협, 판타지, 로맨스 판타지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는데, 셋 모두에서 회귀한다. 불량했던 혹은 천대받는 무림세가의 딸이나 아들이 비참하게 1회차 인생을 마무리 짓고,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가 1회차 인생의 정보를 이용해 ‘제대로’ 살아가며 힘을 키우고 세가를 번창시키고 악을 무찌른다. 판타지도, 로맨스 판타지도 똑같다. 주인공이 ‘잔혹한 죽음’ 이후 과거로 회귀하고, ‘예언적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만행, 즉 ‘틀린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바꾼다. 그리하여 그들은 찬탄한 성공에 다다른다. 뛰어난 능력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세계의 영웅이 된다. ‘완벽한 삶’이 되는 거다.
회귀물. 이런 구조로 짜인 스토리에는 묘한 감동과 짜릿한 쾌감이 있다.
때론 애틋하고 때론 속 시원한 회귀물을 감상하며 사람들은 주인공에 어느 정도 자신을 투영하고 있을 것이다. ‘전에 없던 능력을 얻어’ ‘과거로 회귀하여’ ‘완벽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어렸을 적 일들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유독 수치스러웠던 순간만은 생생히 기억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누군가를 실망시켰거나 내가 수치심을 느꼈던 순간들을 샅샅이 되짚으며 과거로 돌아가길 바랐다. 중학생 때는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 학업적 성취도 교우관계도 완벽하게 새로고침하고 싶었고,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 때 저질렀던 부끄러운 만행들을 지우고 싶었다. 중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서 외모를 더 예쁘게 가꾸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랬다면 또래 친구들에게 내가 더 주목받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대학생이 되어서도 초중고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내렸던 선택을 고치고 싶었다. 대학생 때 나는 사회불안이 극심했는데, 타인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후회했다. 그때 이런 말을 하지 말걸, 내가 틀린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실망시킨 것 같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해서 타인에게 웃음을 산 것 같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텐데, 더 적절하고 ‘옳은’ 선택을 할 텐데. 그럼 지금의 나는 이렇게 초라한 사람이 아닌 완벽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내 과거엔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틀린’ 행동으로 인해 ‘틀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틀린’ 결정을 내렸던 생의 모든 장면이 나를 좀먹었다. 나는 매일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게 십 년 전이든, 10개월 전이든, 10일 전이든, 10분 전이든. 고쳐야만 하는 것투성이였다.
그중에서는 내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틀린 과거’가 있다. 약 3년하고도 반쯤 전에 둘째 고양이를 떠나보낸 일이다. 내가 조금만 더 고양이라는 존재를 이해했더라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아주 조금만 더. 좋은 결정을 내렸더라면. 절망감, 후회, 죄책감, 나를 향한 분노, 슬픔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밥을 먹다가도 울었고, 드라마를 보다가도 울었고, 그냥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도 울었다. 슬픔보다도 후회와 죄책감이 컸다. 후회와 죄책감 때문에 충분히 슬퍼할 수도 없었다. 나는 평생토록 그 앞에서는 죄인이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U5trjpFus0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는 못 하지만, 내 삶에 단 하나의 노래만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떤 곡을 고를 테냐 묻는다면 나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이하 매닉스)의 ‘Everything must go’를 꼽는다. 둘째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듣게 된 노래였다. 이 곡은 사연이 깊다. 매닉스는 1986년 결성해 1992년 데뷔한 영국의 4인조 록 밴드다. 노동계급이었던 그들은 자본주의 신분제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과감한 메시지와 더불어 풍부한 사운드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네 명의 멤버는 결코 바뀌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1995년 2월 1일, 한 명의 멤버가 사라졌다. 리치 제임스, 작사와 리듬 기타를 맡았던,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멤버였다. 그는 밴드의 작곡가이자 메인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와 함께 묵고 있던 호텔에서 누구도 모르게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남은 이들, 세 명의 밴드 멤버들은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친구를 잃었다.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리치를 사랑해마지않았던 그들은 큰 충격에 빠져 음악활동을 중단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뒤인 1996년 <Everything Must Go>라는 앨범으로 돌아온다. 앨범 속에는 리치의 흔적이 가득했다. 앨범을 제작하기까지 얼마나 큰 절망이 있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왔다. ‘Everything Must Go’라고 외치면서. 모든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라고, 또 모든 것은 결국 보내주어야 한다고. 그들은 여전히 리치가 죽지 않았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별했고, 이별을 인정했다. 그리고 나아갔다.
노래를 들으면서 떠나보낸 나의 작은 고양이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던 고양이를 떠나보낸 뒤 나는 삶의 의지를 잃었다. 내가 내딛은 세계의 절반이 무너져 내렸다.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멈추지 않았고, 시간은 앞으로 흘렀다. 노래를 반복재생하며, 문장을 머리에 떠올렸다. Everything Must Go. 나의 소중한 고양이를 지나온 시간 속에 간직하고, 결국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이렇게 둘째 고양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꺼낼 수 있게 되기까지도 3년이 꼬박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엔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고양이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과거에 내린 ‘틀린 결정’들은 고쳐지지 않았다. 작은 고양이가 아팠을 때 했던 ‘틀린’ 선택은 고칠 수 없었다. 틀린 선택들은 계속 그 시간에 자리할 것이다. 다만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던 과거의 잘못들을 제자리에 남겨두고, 나는 나아갔다. 지금은 팔뚝에 고양이들의 그림을 새겨 넣었다. 두고 온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새로운 하루를 산다.
청소년기부터 매일매일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틀렸던 나를 고치는 상상을. 그러나 그 상상은 틀렸다. 내 인생은 고칠 수 없다. 나아갈 뿐이다. 틀렸던 것들은 고쳐지지 않는다. 그걸 인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여정이 꽤 길었다.
아, 매닉스는 2024년 현재까지 왕성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