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순대, 퇴근길 늘어선 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에서 꺼내는
순대가 무지 맛있어 보였다.
길거리엔 어느새 화사한 봄옷이 눈에
띄기도 한다.
워낙 추위 타는 체질인 나는
봄옷을 언제 입을지 모르겠다.
3월이지만 오늘도 바람이 쌀쌀했다.
패딩을 다시 꺼내 입었다.
일을 마치고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가는데 길가에 순대 차가 서 있다.
순대 차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올려 있었다.
추울 땐 따끈한 게 최고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저절로 멈추어졌다.
내가 스무 살 무렵까지 엄마는 늘
가마솥에 불을 지폈다.
엄마와 가마솥, 정겹고 그리운 풍경이다.
가마솥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에서 꺼내는
순대가 무지 맛있어 보였다.
마침 속도 출출한데 사 가지고 가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줄이 너무 길었다.
퇴근길 지하철을 막 빠져나온 사람들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급기야 계단까지 내려갔다.
하는 수 없이 사 먹는 걸 포기했다.
그래도 발길이 안 떨어져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가격표를 찬찬히 살펴보니 1인분 기본이 5천 원이다.
내장을 섞는다거나 하면 가격이 올라갔다.
가마솥이라 조금 비싼 모양이다.
줄 맨 앞에서 서성이면 새치기로
오해받을까 봐 아무도 없는
비닐 가림막에 서있었다.
그곳에 있으니 가마솥 옆이 보였다.
나는 가마솥에 푸짐하게 들어있는
순대가 보고 싶었다.
순대 차 사장님의 손길은 무척 바빠 보였다.
열심히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비닐 가림막과 솥에서 나오는 김 때문에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조금 이상한 건 순대 사장님이 자꾸
곁눈질하는 게 느껴졌다.
바빠도 너무 바쁜 그 와중에 나를 향한
경계심은 무슨 의미일까?
아니나 다를까,
"거기 계시면 신경 쓰여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리로 가세요."
급기야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넋 놓고 있다가 흠칫 놀라 물러섰다.
뚜껑을 열 때 뭣 때문에 그리 신경을 써야 했을까.
의아했다.
그때 어렴풋이 스쳐 가는 게 있었다.
맞다. 무늬만 가마솥.
가마솥 속엔 비닐로 순대를 감싸 보온효과를
주고 있었다.
비닐을 들추고 순대를 꺼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거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사 먹는 사람 없는 썰렁한 가게보다
왁자지껄 줄 서서 기다리는 곳은
보기도 흐뭇하다.
더 잘되라고 응원의 박수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꼼수는 안 부렸으면 한다.
특히, 퇴근길 허기진 배를 채우려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정직한 음식을 팔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