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참 독특하게도 생겼습니다. 빨려 들 것 같은 검은 주둥이는 영화 <듄>에 나오는 모래 괴물을 닮았고, 묘하게 균형 잡힌 몸의 실루엣은 신령한 동물을 본떠서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손잡이가 있는 것을 보아하니 자주 들고 나는 물건이었겠죠?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백제 유적, ‘호자’는 문화재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하던 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호자(虎子) 라면 호랑이 새끼란 의미인데요. 자세히 살펴봤더니, 커다란 입 위로 깨알만 한 콧구멍 두 개와 단추 구멍보다 작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호자’라는 이름을 듣고 보면 익살스럽고 귀여운 표정의 새끼 호랑이를 어렴풋하게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도대체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이었을까요?
요강이었습니다. 신비로움에 해학까지 갖추었던 토기, 호자의 용도가 백제 시대 귀족 남성들의 오줌통이라니 조금 시시하게 느껴졌는데요, 다시 생각해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요강단지에조차 예술혼을 불어넣는 조상들이라니,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호자는 중국에서 왔다고 합니다. 중국의 문헌에 “신선이 호랑이의 입을 벌리게 한 뒤 거기에 소변을 보았으며 이를 호자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고요. 검색을 좀 더 해보니 황제가 행차할 때 호랑이 기운을 받는다며 시중을 드는 하인에게 호자를 들고 뒤따르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중국의 호자는, 청자로 만들어져서 좀 더 정교하고, 근엄한 호랑이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만약 이것을 먼저 보았다면 ‘요강단지 한번 요란하네!’ 하고 심드렁했을 겁니다. 하지만 백제의 호자는 좀 달랐어요. 중국의 것보다 소박하지만 꾸밈없고 그러면서도 위트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품은 새끼 호랑이의 주둥이를 보면서 ‘저 너머에 아득한 심연의 세계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엉뚱한 상상도 하게 되더군요.
호자 덕분에, ‘요강’ ‘호랑이’라는 콘셉트만 중국에서 가져왔을 뿐이지 자신만의 개성을 부여해 완전히 다른 작품을 창조한 백제 조상들을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게 바로 이런 예술혼이거든요.
2021년의 마지막 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22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라는데요. 내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호자’를 그려 보았습니다. 그림이라는 게 바로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남자도, 귀족도, 금수저도 아니고, 요강단지가 필요한 시대도 아니지만, 내 안에서 넘쳐 흐르는 영감을 담을 단지가 필요했거든요. 이왕이면 멋스럽고 독특한 게 좋겠죠. 바로, 이 녀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