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got it , Yeah baby, she's got it
석회암으로 만든 이 조각상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그 형태만큼이나 엉뚱한 이름 때문입니다. ‘빌렌도르프의 비. 너. 스’라니! 비너스라면 아프로디테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름다움을 담당하고 있는 여신이 아닌가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을 그리며 당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표현했고 고대 그리스의 어느 조각가는 ‘밀로의 비너스’를 통해 여성신체의 황금비율을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의 몸은 무엇인가요? 8등신은커녕 5등신도 간당간당 한 비율에 풍만한 엉덩이와 볼록한 배,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가슴은 오래전부터 사회적으로 통용되던 미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임신한 여성의 몸을 조각했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물론 생명을 잉태한 여성의 몸은 아름답지만, 그 자체를 미의 기준으로 보진 않잖아요. 그럼 도대체 왜 이 여인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불렀을까요?
우선 이 조각상은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지방에서 발견되었고, 선사시대의 유물입니다. 굶주리지 않는 것, 살아남는 것, 그리고 자손을 퍼트리는 것이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그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시 여성들의 워너비가 아니었을까요? 현재의 셀럽들이 여신으로 추앙받듯 조각의 모델이 된 여인도 그 시대에는 여신이라 불렸을지도 모릅니다. 여러 기록을 보며 생각을 정리해 보니 이 조각상에 비너스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군요.
학계에서는 이 조각상을 ‘지모신’으로 본답니다. 지모신(地母神)이란 인간의 탄생과 안녕, 그리고 풍요를 관장하는 신인데요. ‘지모신’으로 추정되는 유적들을 검색해보니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유사한 형태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을 그저 ‘지모신’이라 불렀다면 이렇게까지 흥미롭진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작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요!
이 조각상은 고작 11㎝에 불과한 작은 인형입니다. 발끝이 뾰족하고 고정대도 없어서 바로 세울 수도 없지요. 학자들은 이것이 사람이 지니고 다니는 ‘부적’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는군요. 다산이든 건강이든 오늘의 안녕이든,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앙증맞은 인형을 지니고 다니는 선사시대 사람들을 상상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굶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던 시대에도 일상에 예술이 있었다는 의미니까요. 부적의 형태가 임신한 여성,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엄마’를 닮았다는 점은 더 의미심장합니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한 근원, 나를 키워낸 존재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선사시대도 사는 게 힘들었겠지만, 21세기 인간의 삶도 여전히 고단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먹는 것과 살아남는 것, 그리고 임신이나 육아와 관련해 조상들과는 다른 방식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요. 그렇다고 힘들 때마다 엄마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 부적이든 인형이든 잠시 마음을 기댈 곳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든 것을 품어줄 것만 같은 풍만한 이 조각상에 자꾸 눈길이 가네요. 매일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에게도, 어쩌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하나쯤 필요한 게 아닐까요?
(202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