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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L Feb 01. 2022

꼭두

외로운 인생길, 동행이 필요할 때

인간에게 가장 막막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외로움이 서러움이 되고 결국엔 두려움이 되는 순간, 아마도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이 아닐까 싶네요.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 속으로 혼자 떠나야 한다면, 상상만 해도 목덜미가 서늘해집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우리 조상들은 나무로 아주 독특한 녀석들을 만들고 ‘꼭두’라 불렀습니다.     


꼭두를 처음 본 것은, 몇 년 전 북촌의 한옥에서였습니다. ‘꼭두랑 한옥’이라는 생소한 가옥 이름에 이끌려 들어갔다가, 유니크한 외모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가진 작은 목각인형들과 마주했죠. 하나하나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한참을 바라보았는데요. 더 흥미로웠던 것은 꼭두의 쓰임새였습니다. 이 조그만 녀석들은 상여에 장식되어, 세상을 떠난 이들을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데요. 그래서 꼭두를 ‘저승길의 동반자, 혹은 안내자’, ‘새로운 세계의 길잡이’라고 부른답니다.     


왜 ‘꼭두’인지, 그 어원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꼭두'는 제일 처음이나, 어떤 물체의 가장 윗부분을 뜻하는데요. ‘꼭두새벽’, ‘꼭두 머리’와 같은 단어가 여기에서 나왔고요. 제일 처음과 가장 윗부분이다 보니 이전의 영역과 맞닿는 부분, 즉 어떤 부분의 경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도록 <한국의 꼭두>에서는 꼭두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선 위에 있다고도 표현하고 있는데요. 어쩌면 우리 조상들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에 있는 존재, 그러니까 천사나 요정을 ‘꼭두’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동물의 형태를 한 꼭두는 종류에 따라 모양도 각양각색입니다. 역할에 따라서는 ‘안내하는 존재’, ‘호위하는 존재’, ‘시중드는 존재’, 그리고 ‘흥을 돋우는 존재’로 나뉘는데요. 도대체 조상들은 저승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복잡하고, 위험하고, 고되고, 또 힘들다고 여겼길래, 이토록 많은 동반자가 필요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죽음'이란 커다란 공포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근엄하고, 공손하고, 재밌고 또 귀엽기까지 한 꼭두의 표정들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녀석들과 함께하는 저승길이 그리 두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꼭두가 안내하는 죽음, 그 너머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며칠 전의 일입니다. 전에 살던 세입자가 집을 비웠다고 하길래, 내부도 다시 확인하고, 가구 배치도 고민할 겸, 빈집을 찾았는데요. 사람의 온기가 빠져나간 공간은 생각보다 더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조금 오래된 건물이어서 그랬을까요? 입주를 위해 깔끔하게 청소를 해놨음에도 불구하고 황량하게만 느껴지는 공간에 혼자 있으니, 울컥 서러움이 밀려왔어요. 이렇게 쓸쓸한 집으로 이사 오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서글픈 분위기를 바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홍대의 소품 가게에서 노란 손뜨개 인형을 하나 샀습니다. 만약 파인애플 요정이 있다면, 딱 이렇게 생겼겠구나 싶었는데요. 그 녀석을 미리 가져다 놓은 덕분에 빈집의 분위기는 한층 아늑해졌고, 며칠 후 나는 파인애플 요정이 반겨주는 새집에서 안락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집과 새집을 연결해주었던 나의 꼭두, 파인애플 요정은 지금도 소파 위에서 명랑한 집안 분위기 조성에 한몫하고 있지요.           


죽음까지 가지 않더라도, 살다 보면 왠지 서글프고 쓸쓸해지는 순간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외로움에 증폭 장치가 달리는지 서럽기까지 하는데요. 그때가 바로, 나만의 꼭두가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녀석을 맞이했습니다. 꼭두 중에서 ‘흥’을 담당하고 있다는 ‘영수(靈獸)를 탄 악사’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꼭두들 중에서 유독, 이 녀석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던 이유를 생각해 봤어요. 어쩌면 지금 내 인생에 필요한 존재는 안내하는 자도 호위하는 자도 또 시중드는 자도 아닌, 바로 내가 무엇에 도전하든 ‘흥’이 나도록 응원하는 자이기 때문이겠죠.     


코믹하게 생긴 영물을 타고, 볼을 부풀려, 제법 진지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꼭두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이 매력적인 녀석이 곁에서 나를 응원해 준다면, 세상 두려울 것도, 쓸쓸할 것도, 또 지루할 새도 없이, 제법 신명 나는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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