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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Mar 24. 2022

"너는 나를 몇번이고 일으킨 사람이야"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 발견한 덕질의 쓸모

"그러게 내 빠순이나 계속하지 주제넘게"

1n년 인생을 누군가의 '빠순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정말이지 상처로 별안간 쓰러지지 않을 수 없는 대사였다.

내 세상이 무너졌어,,,나 김애니는 이시간부로 고유림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아무튼 토요일에는 일요일이 있음에 감사하고, 일요일 부터는 평생 '토일'만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게 만드는 이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요망하고 깜찍한 최근 화제작에서 '빠순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막상 듣고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 다 누군가를 덕질하는 빠순이들의 이야기잖아!"








승완이가 이진이를 덕질한다고 하기에는 사알-짝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단순히 승완이가 이진이를 군기가 빡센 동아리의 하늘같은 선배님이라서 따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묘하게 승완이와 이진이의 케미도 꽤 좋은 편이라는 걸 나와같이 2521(스물다섯스물하나의 약어. 앞으로는 편의상 이렇게 부르도록 하겠다.)하는 날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알아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뻐서" 고유림을 좋아하는 문지웅은 덕질의 가장 기본 덕목을 충실하게 따르는 중이고. 아무튼 내가 이 관계도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서로가 서로를 '덕질'하면서 모두가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진이는 희도에게 항상 묻는다. 어떻게 그런 멋진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냐고. 희도를 보며 끊임없이 용기를 얻고 좌절 속에서도 몇 번이고 일어난다. 희도는 자타공인 세상에서 고유림을 제일 좋아하는 팬이다. 고유림을 연구하고, 고유림을 따라하고, 고유림과 라이벌이 되는 것이 선수로서의 목표였다. 유림이또한 어렸을 적 희도에게 8:0으로 패배한 설움을 바탕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리까지 올랐다. 유림이에게 희도는 8:0으로 꺾을 수 없는, 가족의 생계와 평안을 책임질 펜싱선수로서의 삶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인 동시에 동기부여이자 위로와 사랑을 주는 존재다. 서로가 서로를 덕질하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더뮤지컬

이런 관계성을 보며 나는 그간의 '덕후'로서의 내 삶을 떠올렸다. 물론 내 본진(제 1순위로 덕질하는 대상)과는 서로를 덕질하는 상호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항상 그들에게서 큰 희망을 보았고, 용기를 얻었으며, 두려움을 극복해낼 돌파구를 찾았다. 학창시절엔 좋아했던 아이돌이 단순히 멋진 음악과 춤으로 인기를 얻는 것을 넘어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본인들만의 색깔을 구축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멋진 모습을 보면서 닮고 싶었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팬이 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나도 내 개성을 잃지 않고 찾아나가야겠다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평생을 문과로 살아온 나는 취준생 신분으로 컴퓨터활용능력 1급이라는 어마무시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몇천가닥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남들 다 따는 기본스펙이라니까 나도 따야는 겠는데 시험이 너무 생소하고 어려웠다. 강의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고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나아지질 않으니 시험을 응시하러 가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워졌고 도피성 수면과다로까지 이어졌다. 이번엔 꼭 붙어야한다는 간절함이 도리어 한없이 부족한 나 자신만 보게해서 정말 괴로웠다. 그때 조승우배우가 옛날옛적 처음 <지킬앤하이드>라는 작품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던 때의 인터뷰를 보게되었다. 마냥 대단하고 커다란 별처럼 보이던 그 배우는 "그당시 초라한 자신이 그렇게 큰 무대, 수많은 관객 앞에 서는 것이 너무 두려워 다 때려치고 도망치고싶었다"고 고백했다. 첫공연을 올리기 전에 같이 캐스팅되었던 기라성같은 선배의 공연을 먼저 보고나니 자신은 정말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고도 했다. 그 인터뷰는 당시 힘든 시간을 겪던 나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다. "아, 저렇게 능력있는 커다란 사람도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던 때가 있었구나. 저 배우도 그런 시기를 거치고, 결국 극복해내고 무대에 올랐고 지금과 같은 대배우가 되었구나. 나만 이렇게 힘들고 무서운 게 아니구나. 그러면 나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내년에는 작년에 진짜 힘들어서 시험이고뭐고 다 때려치고 싶었지 뭐야! 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나는 그 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컴퓨터활용능력 1급 합격소식을 전해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1등으로 불안하고 고달픈 취준생이라는 신분으로 살고있다. 정말이지 앞이 캄캄하고 내가 뭘 해야될 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해왔던 건지도 후회스럽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단어들이 다 내 것인 것같은 절망감에 빠져 "나는 이제 코로나블루도 아니고 코로나블루블랙이야"라고 스스로를 자조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그때 나를 침대에서 끄집어내 다시 책상 앞에 앉힌 건 죽고싶지만 먹고싶은 떡볶이도, 따뜻한 봄날씨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다름아닌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편파판정에도 굴하지 않고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황대헌선수였다. 

황대헌선수 인스타그램 스토리

어이없는 실격판정을 받았던 날 밤, 나는 실시간으로 경기를 지켜보다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황당함에 비명을 질렀고 화를 삭이지 못한 채 밤을 꼴딱 새버렸다. 내가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할 수 없음에도 이 불공정한 상황에 대한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커다란 허탈감을 느낄 선수 본인이 너무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황대헌 선수의 인스타그램스토리에 "부딪혔다면 돌아갈 방법을 찾아라"는 마이클조던의 명언이 올라왔다. 그 말을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정말 단단한 사람이구나, 멋진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가 이 상황을 잘 견뎌내겠다는 믿음이 생기자 거짓말처럼 잠이 쏟아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내가 일어나서 본 황대헌선수의 인터뷰에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걷처럼 머리가 얼얼했다. 화 나고 억울하지만 앞으로 남은 것들을 해내기 위해 "밥도 잘 먹고 더 잘 자야되서 그렇게 했다"는 말이 하루종일 나를 어지럽혔다. 나는 고작 침대에 누워서 코로나때문에 얼어붙은 취업시장을 탓하기만 했다. 나는 알바하고 학점따느라 열심히 살았는데 각종 수상경력과 대외활동, 인턴경험이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게 너무 억울했다. 끝없는 자기비하와 남탓에 취해 방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슬퍼하고만 있었다. 나를 둘러싼 외부환경만 탓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 나에게 선수의 인터뷰는 어떤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아, 나도 앞으로 더 많이 남았는데.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을텐데. 밥 잘 먹고, 잘 자고,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되는구나.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일어나 책상앞에 앉았다. 건강한 식단을 제때 잘 챙겨먹었고 일찍 자고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몸이 움직여졌고, 에너지가 생겼고 다시 밖으로 나올 용기가 생겼다.

그 이후로도 황대헌선수의 명언폭격은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단단함에, 성숙함에, 멋진멘탈(과외모)에 속절없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이어진 500M 경기에서 안타깝게 넘어지며 실격판정을 받은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사실 이미 이번 경기는 실패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후회없는 경기를 위해 실패할 것을 알더라도 시도했다."고 답했다. "이렇게 잔잔하게 끝나는 거는 아니다"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진짜 너무너무 닮고 싶었다. 나였다면 전국민이 지켜보는 인터뷰에서 내 잘못이었다고 저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경기에서 이미 이기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섰음에도 불구하고 더 도전해 볼 생각이나 했을까?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고, 실패할 것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승부욕이 너무 강한 탓에 지기 싫어서 게임 자체를 하지 않는, 말싸움이 싫어서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회피형인간에게 선수는 도전이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쓰러지고 싶을 때마다 그동안 내가 용기를 얻었던 말과 모습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이 겪었을 아픔의 시간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현재 내가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을 겹쳐본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고픈 마음이 생긴다. 오늘도 나는 이전과 다름없이 무스펙에 가까운 취준생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고 다른 취준생들의 화려한 스펙에 나를 비교하며 우울해지지만 그럴 때면 조용히 갤러리에 저장된 내 덕질의 역사를 살펴본다. 내게 용기를 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누군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덕질을 끊임없이 깊게 하냐고. 너무 신기하다고. 이건 어쩔 수 없는 나의 '덕후DNA'때문이라고 웃으면서 대답해줬는데, 이 글을 빌어 그분께 내 덕질의 이유를 정확히 말해주고 싶다.


 "그들은 나를 몇번이고 일으킨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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