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때, 나를 유난히 아끼고 사랑하셨던 외할머니는 도깨비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젊은 시절 외할아버지가 어느 어두운 밤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깨비와 씨름 한판을 벌였다는, 바로 그 전설 같은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면 대개 외갓집의 잔치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땐 정말 무슨 잔치가 그리 많았던지.)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질 무렵, 커다란 마당에 설치했던 천막들이 치워지고 동네 어르신들만 남은 시간. “그만들 마시고 이제 가슈!” 하고 외할머니가 핀잔을 줘도, 들은 척도 않고 거나하게 취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럴 때면 외할머니는 나를 옆에 앉혀 과일을 깎아주시며 슬며시 도깨비 이야기를 시작하시곤 했다. 나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 이야기를, 호기심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머니 곁에 바짝 붙어 듣곤 했다.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할아버지에게 씨름을 도전해 온 도깨비를, 할아버지는 단숨에 안다리걸기로 넘어뜨리셨다. 그러고는 볏짚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로 도깨비를 전봇대 같은 곳에 꽁꽁 묶어두고 집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 자리에 가보니 도깨비는 온데간데없고, 도깨비를 묶어 두었던 새끼줄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는... 그런 결말이었다.
또 외할머니가 어린 나에게 항상 하시던 당부가 있었다. “도깨비가 갑자기 나타나면 겁먹지 마라. 분명 씨름하자고 걸어올 테니, 씨름하게 되면 도깨비의 가장 큰 약점인 왼쪽 다리를 안다리로 걸고 자빠뜨려라.”
나는 그 당부를 생명줄처럼 기억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오밤중, 외갓집에서 산을 넘어 우리 집으로 가야 할 때가 있었다. 나보다 더 어린 여동생들을 데리고 산을 넘어야 하는 길.
나는 외할머니께서 손수 볏짚을 꼬아 만들어 주신 2미터 길이의 새끼줄을 장수처럼 어깨에 가로질러 맸다. 한 손엔 랜턴을 들고, 입으로는 주문처럼 ‘도깨비 왼쪽 다리’를 되뇌곤 했었다.
또한, 외할머니는 도깨비가 나타나기 전 징조가 있다고 하셨다. 멀지 않은 곳에 푸르스름한 불빛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이 한참 지난 무렵, 나는 외할머니가 쥐여 주신 새끼줄을 어깨에 메고 랜턴을 들고 산등성이를 넘고 있었다. 두려웠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에게 오빠의 두려움을 들킬 수는 없었다. 나는 도깨비 따위는 무섭지 않다는 투로 길을 열고자, 막대기로 긴 풀들을 칼로 베듯 휙~ 휙~ 쳐댔다. 큰소리로 “훠이~ 훠이~” 소리도 질렀다. 오밤중 나의 서슬에 놀란 온갖 나방이며, 여치, 메뚜기, 산토끼들은 혼비백산하여 정신없이 흩어졌다.
그러다 가끔, 산 중턱 묘지 근처에서 어렴풋이 푸르스름한 불빛이 깜빡이는 게 보일 때가 있었다. 나는 그 불빛을 보는 순간, 두 여동생의 손을 꽉 잡고 미친 듯이 산길을 내달렸다. 아직도 그때의 심장이 쿵쾅거리던 박동이 생생하다.
훗날 어른이 되어 그 ‘도깨비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묘지 주변에서 흔히 보이던 그 빛은 반딧불이 무리였을 수도 있고, 또는 땅속 뼈의 ‘인’ 성분이 분해되며 나온 인화수소가 자연 발화한 것이라고 했다. 발화점이 낮아 아주 약한 온도로 타오르는 그 푸르스름한 불꽃.
이렇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그 시절의 공포도, 외할머니의 당부도 단지 화학 현상의 한 장면처럼 건조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외할머니의 조언(과 새끼줄) 덕분인지, 나는 무사히 산등성이를 넘을 수 있었다. 다행히 도깨비의 씨름 도전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시간은 흘러 나를 각별하게 사랑해주셨던 외할머니는 내 고등학교 시절에 다시 별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도깨비에 대한 추억과 그 따뜻한 당부들은 내 가슴속에 여전히 도깨비불처럼 선명히 남아 있다.
그 기억이 있어, 나는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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