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락의 해부’
진실은 사실인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면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그렇다면 진실은 믿음인가? 믿기로 한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의 말과 기억과 증언으로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는 것은 진실을 밝혀 내기보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를 알아가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한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통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추락의 해부’라는 영화는 이 고통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고,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한 장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사와 긴장감이 영화에 몰입하게 했다. 마지막까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 수 없는 묘한 결말이 마치 삶이란 부조리한 것이고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실이란 무엇이고, 허구와 현실은 무엇인지,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있어야 하며, 신뢰가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의 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프랑스의 외딴 별장에서 사뮈엘 말레스키가 3층 다락에서 추락한 채 발견된다. 그는 숨을 쉬지 않은 상태였고, 그를 발견한 사람은 산책하다 돌아온 11살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그의 아들 다니엘 말레스키다. 다니엘이 엄마를 간절하게 부를 때 2층에 있던 아내 산드라가 2층에서 내려온다.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은 머리에 난 상처이지만 추락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인지 누가 흉기로 휘두른 것인지 알 수 없는 타살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인 단순 추락사라고 보기에는 공간 구조상 불가능하고 자연사가 아닌 의문사기에 수사 과정에서 결국 아내 산드라가 피고인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게 되고 기소된 산드라의 재판은 1년 넘게 진행된다. 산드라의 변호사인 벵상에게 자신은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변호사는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며 남편의 자살에 무게를 두고 남편이 자살을 시도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산드라는 기억 속에 6개월 전 술을 먹은 남편이 구토물에서 나온 하얀 약을 얘기하며 그것이 자살을 시도한 것이 아니었을까 얘기한다. 재판에서 변호사는 남편이 자살이었음을 검사는 산드라의 타살이었음을 밝혀내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없다. 그때 남편이 사망하기 전날 usb에 녹음된 남편과 아내의 녹음 파일이 중요한 자료로 채택이 되었고 판사, 검사, 배심원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산드라와 사뮈엘의 적나라한 싸움의 광경이 드러난다. 사실 그들 부부의 싸움이 화면에 드러나지만 실질적으로는 녹음된 소리를 통해 듣는다는 것이다. 깨지는 소리, 때리는 소리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녹음된 파일을 통해서 여성 작가였던 산드라의 외도와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남편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면서 제기한 표절, 4살 때 아들이 영구히 시신경을 잃게 되는 데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느끼며 죄책감에 빠져 있는 사뮈엘, 그래서 그를 돌보기에 자신이 해야 할 역할들이 많다고 불공정하다는 것,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를 잃은 아내에 대한 불만, 아내 역시도 남편의 고향인 머나먼 프랑스에 와서 살아가는 불편함과 남편이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 등 격렬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부부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들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부부의 갈등을 온전히 듣게 된 아들 다니엘은 엄청난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엄마 아빠의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다니엘은 더 이상 엄마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아빠 사뮈엘의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인 다니엘의 증언만 남게 된 재판 상황에서 다니엘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다니엘은 마지막 증언을 앞두고 그가 키우던 수눕(개)에게 아빠와 마찬가지로 약을 먹이는 실험을 하고는 아빠 역시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증언에서 정황상 ‘어떻게’를 말할 수 없으면 ‘왜’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며 아픈 수눕을 병원에 데리고 갈 때 아빠가 자신에게 해 준 이야기를 꺼낸다. 아빠는 수눕이 너를 돌보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고 또한 스눕이 언젠가는 너를 떠날 수 있다는 것, 수눕은 훌륭한 개였지만 많이 지쳐 있고 그러기에 너도 수눕이 없는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고 얘기를 한다. 결국 그 얘기는 사뮈엘이 자살했음을 암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었고, 결국은 엄마 산드라의 무죄로 재판은 끝나게 된다. 그러나 재판에서 이긴 산드라 역시 이겼지만 변호사에게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아들 다니엘과 만나 서로 끌어 안은 후 남편이 자던 침대에서 스눕과 함께 누운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던 다니엘이 마지막 증언을 하기 전, 그와 함께 있었던 법무관과의 대화다.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너무나 힘들어 하던 다니엘이 과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갈등하고 있었을 때 법무관이 다니엘에게 말한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고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때 네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 말처럼 다니엘은 마음의 결정으로 엄마와 함께 살아갈 날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마지막 증언 자리에서 얘기한 아빠와 다니엘의 대화는 정말인가라는 사실 의심이 가기도 한다. 다니엘은 비록 시신경이 영구히 손상되어 거의 볼 수 없지만 피아노도 잘 치고 영리한 아이였다. 어쩌면 그것은 다니엘이 지어낸 얘기는 아니었을까? 결국 다니엘은 살아 있는 엄마를 선택하는 것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산드라가 정말 남편을 죽였을까 아니면 자실일까 생각이 들었다. 정황상 남편을 죽였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왜 죽였을까’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니엘의 사고에 대해 남편을 원망할 수도 있고, 외도와 표절에 대해 얘기할 때의 남편이 미웠을 수 있고, 원하지 않은 프랑스에서 살게 되는 불편함, 남편의 무기력함 이 모든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죽였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둔기로 쳤다면 둔기가 발견됐을 텐데 그것도 발견되지 않았고, 자신이 죽이지 않았음을 변호사에게 확실하게 두 번이나 말했고, 남편의 짜증나는 음악 소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로 남편을 극도로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 그녀가 안 죽였을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편은 왜 그랬을까? 아이의 사고 이후로 무너져 가는 부부 사이의 균열은 사실 어느 한 가지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들의 사고에 대한 죄책감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우울증 약을 복용하게 되고 경제적인 것 또한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로서 살고 싶지만 아내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빌어 작가로서 살아가기도 쉽지 않고, 거기에다가 발견된 아내의 외도, 아이를 돌보며 책임져야 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겹치면서 사뮈엘은 말할 수 없는 무기력감에 지쳐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명확하게 영화 속에 밝혀지지 않았기에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가장 친밀하고 가장 사랑해야 할 부부 사이의 벌어진 균열의 과정이 법정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풀어내지 못했던 불신과 갈등은 그들 부부가 극단으로 치닫게 됐으며 신뢰가 깨진 부부 사이에 모습이 공개되며 그것은 어린 다니엘에게 극강의 고통을 가져오게 했다. 겉으로 보여지는 외면 너머의 무너지고 깨어진 가족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그들 부부 사이의 문제의 시작이 어디서 인지는 명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평등한 부부의 관계가 서로 균형을 잃어가는 그 시작점에서 풀어가지 못하며 원활한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그들의 문제점이 죽음으로 더군다나 법정에서 드러났다는 것만으로도 법정이라는 공간은 참으로 고통의 공간이라는 것, 그토록 사랑하던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그 죽음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이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며 재판 과정에서 이긴 산드라 역시 이겼다는 것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이며 상처받은 다니엘이다. 재판으로 갈지 몰랐다는 산드라의 말처럼 법정이란 공간에 가기 전에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들여다보며 다니엘이 결정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인생은 선택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선택과 어떤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까? 참으로 어렵다. 산다는 것은 정말 지치고 힘든 일이다. 바라기는 타인의 손에서 우리의 삶의 해부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법정에서 녹음된 파일을 들었던 장면이다. 시각장애가 있던 아들이 소리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 어쩌면 우리의 시각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왜곡할 수 있고 편견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소리는 들리는 소리 그 자체를 판단하기에 편견에 빠지지 않고 마음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법정 영화의 백미인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범인이 벌을 받고 정의가 바로 서는 쾌감 대신 추락의 해부는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보여주는 색다른 긴장감을 통해 법정 영화의 재미를 주는 동시에 피고인이 무죄를 받았지만 과연 무죄인지를 알 수 없기에 법정이란 어느 누구도 승자가 없는 진실을 판결하는 곳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생의 내면을 살샅이 해부하는 살벌한 전쟁터와 같은 곳임을 보여준다. 송두리째 파헤쳐진 인생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그곳에서 우리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존재들과 과연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또한 우리의 판단 근거가 되고 있는 정보들이 얼마나 기억 속에 왜곡되며 모호한지 사실과 진실 그 너머의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이기에 꼭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