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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류 Feb 04. 2022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내가 떠난 자리를 매만지는 것 


1. 멀리 있지 않은 단어 죽음


아침 출근길에 길을 나서면 불현듯 다른 계절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서 찌는 여름에 느껴지는 가을바람이라던가,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가만히 닿는 봄기운이라던가. 신년이라는 것은 나에게 그런 거대한 공포를 가져다주는 시기이다. 

벌레에 대한 강력한 트라우마가 있는 나에게 있어서 봄이라는 것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악몽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푸르러지는 산과 들, 길거리를 바라보는 것은 저 안에 얼마나 많은 벌레가 살까하는 공포를 일으킬 뿐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잠들어 있고, 죽어가는 시기, 겨울만이 커다란 안식을 준다. 그런데 그게 끝나가는 기운이 몸에 머무를 때, 걷잡을 수 없이 강력한 우울증 상태에 빠지고, 자가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해가 바뀌어서 나에게 유일하게 좋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롤챔스가 다시 열린다는 것이다. 롤에서는 챔피언이 공격을 받아 죽으면 다시 넥서스에서 부활해서 전투에 임하게 된다. 이 죽음이 반복되면 챔피언을 키우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되도록 안 죽으면서 상대방을 많이 죽여야 한다. 한 게임 안에서 ‘죽는다’, ‘죽인다’와 같은 용어는 참 쉽고 편리하게 사용된다. 

이렇게 죽는다, 죽인다, 죽음, 잠듬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깝게 있다. ‘너 죽을래?’, ‘아오 그냥 뒤져’, ‘죽겠다, 정말.’ 등과 같이 우리의 생활 언어에서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흔히 쓰이는 말 중 하나이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죽음을 만나면, 혹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닿게 되면 우리는 마치 처음 만나는 단어인거마냥 두려워하고 도망치듯 회피한다.      



2. 사람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는 사람


시신은 사람이 남기는 가장 큰 메시지라고 한다. 범죄에 희생된 사람의 시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의 인체란 결국 하루들이 쌓여서 변화하기에 몸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마지막 삶이 어땠는지 극명하게 이야기 해준다.

화자는 이런 사람의 마지막 이야기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을 한다. 시신의 외부에 남아있는 흔적을 시작으로 내부의 혈액에 수치까지 모든 것을 살펴본다. 그 뒤에 이 사람의 사인에 대해서 증명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쉽게 접한다면 이 화자는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접하는 사람일 것이다. 죽어가는 것과 죽음의 이 간단한 단어 사이에는 생명과 시간이라는 단어가 흘러간다. 

책의 중반부까지 나열되어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의학이 발달해서 다행이다 싶은 사건들과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여러 상념이 들게 하는 순간을 제공했다. 이 중에는 내가 뉴스기사 혹은 탐사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본 적도 있는 내용이라서 순간 그때의 감상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만약 이 책이 여기서 의학의 발전을 이야기 하거나 법의학자로서의 사명감을 밝히는데 그쳤다면 난 이 책을 참으로 평범한 책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반전은 뒤에서 이어졌다.      



3.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가.


나는 죽어가는 과정과 죽음, 그리고 죽음 뒤의 상황을 접해본 적이 있다. 모두 다 내 인생의 한 부분들을 꺾어버리는 커다란 사건들이었다. 참 여러 가지 충격을 받는 사건들이었는데 내 주변의 인간관계를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더 큰 불화가 생기기도 했고, 심각했던 불화가 가라앉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을 만났다는 것이 엄청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자주 연락하거나 하지는 않아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어떤 존재의 부재(不在)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이 상실에 대한 체감은 다른 그 어떤 순간보다도 “나”의 존재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다는 것.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에 어째서 그다지도 인간은 종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종교의 매커니즘이 왜 사후 세계에 닿아있고, 환생에 달려있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억겁의 시간적 개념을 가지는지 체득할 수 있었다. 이 영원한 상실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슬픔을 견뎌야 하며, 그들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며, 그들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은 욕망이 순수하게 발현되는 과정이었다. 

화자는 의학자로서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죽음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참 어렵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 사람과 쌓은 시간과 세월이 있어, 반드시 실수가 있고 후회가 남기에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곧 나의 삶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누가 있어 그걸 할 수 있겠는가. 그걸 위해서 우리가 인문학 서적을 탐독하고 명상을 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쉽게 그 자리에 도달할 수가 없지 않은가. 

다만 참 오랜 시간동안 자살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고, 자신을 부정하면서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자살은 하나의 탈출처럼 여겼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분명해지긴 했었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이성적으로만 인지하며 막상 닥치면 두려워할 존재,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4.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나의 죽음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진지하게 가졌다는 것이다. 인생 계획은 참 여러 방면으로 짜본 적이 있었다. 학업 계획, 논문 계획, 연구 계획, 결혼 계획 등등. 이 수많은 계획들 중에서 죽음 계획은 없었다. 나는 뼛속부터 꼰대 기질이 가득한 K-유교녀라서 장례 절차에 대한 것과 그 분위기에 대해서는 제법 또래에 비해 잘 알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정작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떠나는 자리는 내가 매만져야 한다. 언제 떠날지 알 수가 없기에, 머물다간 자리를 살펴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남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은 떠나가고 남은 자리뿐일 것이다. 그 자리를 늘 나를 꾸미는 것처럼 매만져둬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뭔가 뒷정리를 기록해보는 것이 무척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아서 몇 자를 정리했고, 다음은 그 중 일부다.      




나는 죽음이 나의 마지막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사고나 급사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 또한 생명이 경각일 때 CPR을 비롯한 어떤 의료행위도 더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가능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 가족 곁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장례는 후사들의 편의에 따라 진행해야겠지만 적어도 내가 미리 준비한 반찬 혹은 술 한 가지 정도는 손님들께 대접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옷은 한복을 입고 싶다. 예전에 염을 하는 과정을 통째로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똘똘 묶여서 관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아주 고운 색 한복을 입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모시였으면 하고, 색은 푸른 계열의 치마를 입고 싶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것은 모두 결혼을 했다면 남편에게, 그렇지 않았다면 동생에게 주고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은 학과에 기증하고 싶다. 사용했던 물건과 다기 등은 잘 태우고 부숴서 남기지 말고 개중에 누군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있거든 아낌없이 주어도 좋다. 장례식은 전통 예법을 따르되 무덤은 쓰지 말고, 남편이 있다면 남편과 함께 준비한 곳에, 결혼 전이라며 바다에 뿌렸으면 좋겠다. 후략      




이제 정말 죽음이라는 단어가 멀지 않은 나이이다. 가깝게는 부모님, 친척들, 친구들의 죽음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이 닿은 것 같다. 미리 준비해야하는 것들, 죽음 역시 나의 삶의 일부이기에, 한번 정도는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정리해야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상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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