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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류 Feb 07. 2022

영화<YES Man> 진정한 예스는 무엇입니까?

나는 당신의 진정한 YES가 되려 합니다.

부정적인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한마디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내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가지고 있는 단점은 극복할 수 있고, 단점을 잘 살펴서 장점으로 상쇄시킬 수도 있고,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도, 일단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먼저 생각한다. 우리는 끝없는 경쟁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누구보다도 소식이 빠른 시대에서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는 온갖 장점을 섭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을 만끽하면서 드러낸다. 그런 점들을 만날 때면 그렇지 못한 나는 초라해지고, 단점을 감추고 싶어서 나도 더 큰 허영을 하게 되는 우리는 지금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부인과는 이혼했고, 실적도 그다지 좋지 않은 은행원이다. 하지만 잘생긴 내 친구는 곧 아름다운 아내를 얻을 예정이고 그녀의 신부 파티를 함께 하자고 한다. 이혼이라는 딱지도 가슴이 아픈데 그 자리에 전 부인이 와있기도 하다. 이런 거지같은 상황을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까지 겪는다. 이건 뭐 특별한 일은 아니다. 안좋은 일은 원래 한 번에 온다고, 아침에 옷자락에 김치 국물이 튀었던 것이 집에 올 때 즘에는 기획서가 뒤집히고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늘어나듯이 터져나가는 경우는 비일비재한 것이다. 집에 온 직장인들은 대게 혼자서 술을 한잔 마시면서 내일 아침에 위가 아플 것을 고민한다. 


이 영화는 일단 이런 상황에서 “네”라고 대답하라고 한다. 이 부정적이고 가라앉는 삶에서, 정말 하늘에 맹세코 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선 “네”라고 대답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긍정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들     


우리의 주인공은 그 말을 무슨 신앙처럼 여기며 따른다. 긍정적인 그의 멘탈은 실적을 올리고, 임원도 되고, 주변에 친구를 많이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사실 저렇게 살면 분명히 호구로 찍혀서 여기저기에서 이용당하다가 나중에 속옷도 한 장 못 챙기고 나올게 뻔하지만, 이것은 영화고 주인공은 짐 캐리니까. 긍정의 힘은 천천히 전파되지만 강력하게 전파되며 내가 바뀌고 나면 내 주변에 사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참 많아진다는 것으로 요약해서 흐린 눈으로 영화를 보면 될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잘 드러나지도 않고, 오히려 개그적인 요소로 사용되어서 무게감이 없지만, 필자가 이 영화를 중도 하차하지 않고 재미있게 봤던 이유는 짐 캐리는 말로만 yes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남발하고 나면 그것을 책임지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자신의 yes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 때로는 정말 말도 안되는 부탁이고, 내가 책임지기에 버겁더라도, 일단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든 결과를 뽑아 내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이 이 영화에서는 서럽게도 웃기게 표현되어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더 서러운 것은 짐 캐리가 그렇게 많은 “Yes”를 남발하고 얻은 친구들 중에서 하필 그가 사랑하고 싶은 여자는 해당이 없었다. 그녀가 볼 때에는 뭐든지 긍정하는 그는 줏대가 없고, 귀가 얇으며, 나 말고도 저렇게 좋다고 할 여자가 한 트럭은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기실 이 영화에서 제일 제 정신으로 보이는 반응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나만 특별하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좋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친구나 지인으로 두기에 적당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정으로 얻고 싶었던 사랑은 놓쳐버렸다.      



부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여기서 부정이라는 것은 결국 무엇일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정이라는 것은 선을 긋는 것을 이야기 한다.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것과 허용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남에게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것은 나의 영역에서 그것을 할 수 없음을 고지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인해서 상대방이 상처 받는 것에 대해서 감당하겠다는 책임의 표시이다. 


부정하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청자는 우선 상대방의 영역에 대해서 인정을 해줄 필요가 있다. 그 영역안에서 해결될 수 없었던 일이었던 것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그어진 영역에 맞춰서 자신의 영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왜 나에게 이것을 거절했냐고 화를 내는 것은 쓸데없는 감정적 소모일 뿐 그 사람의 영역에 내가 들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서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영역에 맞춰서 내 영역을 조금 수정하면 된다. 


여자가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니라는 말을 해보라는 그녀의 말은 남들에게 내 영역을 정확하게 요구하면서 나에게는 그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 달라는 것, 그래서 나에게만 나만을 사랑하는 너를 보고 싶다는 것이 그 여자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그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 그 자리에 있다고 싶다는 것이 아마도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결국메시지는 이것     


싫은 것을 싫다고 할 수 있어야 좋은 것도 좋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싫어 하는 것이 있어서 싫다고 말하는 것은 나의 영역을 내가 긍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삶을 살아라는 말에 위배되지 않는다. 무엇이든 긍정하라는 것은 아무것도 긍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삶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고통받는 짐 캐리에게 예스교의 창시자는 자신이 말한 철학은 말만 yes를 외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렇다 영화는 아주 뻔하게도 너에게서 우러나는 진정한 진심만으로 긍정하라는 답변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그렇다고 여기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나의 감정이니 잘 알 것 같지만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잘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인생은 결국 길을 찾을 것이고, 그 영역을 위해서 타인을 조금 힘들게 하더라도, 타인의 영역 또한 이해할 것이기에, 그 인생은 분명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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