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관용적인 사회가 되지 않도록
3월 28일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누가 시상을 하게되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영화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영화 전문가들과 대중의 차이, 갈수록 떨어지는 관심 등으로 매년 도전을 받아왔지만, 올해는 폭력이 시상식을 장식했다. 배우 윌 스미스가 코미디언 크리스 락에게 뺨을 때린 사건으로, 전 세계 언론이 화젯거리로 보도하고, 유튜브의 관련 콘텐츠들이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크리스 락이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스미스를 상대로 "지. 아이. 제인 2, 꼭 보고싶어요"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지.아이.(G.I.) 는 미군 보병을 가리키는 말로 '조'(Joe)는 남성을, '제인'(Jane)은 여성을 상징한다. '지. 아이. 제인2'에서 여자 군인이 삭발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당시 머리카락이 없었던 제이다 스미스를 가리켜 던진 농담이었다. 하지만 제이다는 원형탈모가 있어서 딸의 권유로 모녀가 함께 삭발을 하고 대중에게 공개했던 적이 있다. 탈모를 개그의 소재로 삼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크리스 락의 농담이 악의적이진 않더라도 제이다 본인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기에 분명히 경솔했다 할 수 있다.
크리스 락의 농담으로 시상식의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던 가운데 몇 초의 시간이 흐른 후 연단에 올라간 윌 스미스가 크리스 락의 얼굴을 가격했다. 크리스 락은 윌 스미스에게 맞았다는 멘트로 마무리하고 (악의가 없는) 농담이었다고 설명했다. 윌 스미스는 여기에 더하여 욕설을 섞어 "네 xx같은 입으로 내 아내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두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여기에 크리스 락은 다시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네요"라는 멘트로 마무리 했다.
전 세계가 이 사건으로 설왕설래 중이다. 특히 국내 언론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크리스 락의 행동이 부적절함을 넘어 "맞을 짓을 했다"며, 윌 스미스의 행동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것으로, "가족을 건드렸기에" 그에 합당한 대응이고 심지어는 "같은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라는 지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에서는 폭력을 행사한 윌 스미스에 대한 비판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는 듯 하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미국 연예계에 대한 문화적 맥락
아카데미 시상식은 단순히 영화인에게 시상하며 축하의 메시지만 전하는 행사가 아니다. 서로 칭찬만 오고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기 위해 특정 대상을 희화화하고 조롱까지 하는 모습은 서구권의 역사적 전통이다. 중세에 광대가 공연을 통해 면전에서 군주를 조롱할 수 있었던 것은 입에 발린 말로 사람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조선시대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생각을 비판조의 글로 써놓는 것으로 왕권을 견제하는 문화와도 비슷한 것이다. 사관의 기록 열람 자체가 불가한 것을 왕이 열어보고 분개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을 '폭군'이라 규정하는 것과, 서양의 군주가 자신을 희화화하는 광대를 처벌하는 행위로 '폭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크리스 락의 조롱 섞인 농담은 유명인사들의 특권으로 보일 잔치에서 서로를 희화화하고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이들도 평범한 사람과 다를게 없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사회문화적 전통의 일부였다. 물론 이러한 관행이 있다고 해서 크리스 락이 제이다 스미스에게 던진 농담이 무조건 용인될 수 있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의도가 없었어도 가볍게 던진 말에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제이나는 나름의 미적 기준과 신체적 조건에 있어서 여성으로서, 배우로서 탈모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던 개인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크리스 락이 온전히 이해한 상태였다면 그런 농담을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 락의 농담은 적어도 시상식 안에서는 "받아들여질만한 관행"이었고, 실제로 윌 스미스를 포함해서 많은 참석자들은 그 농담에 확실히 웃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미국 ABC 방송의 유명 심야 토크쇼인 '지미 키멀 라이브'에서 MC 지미 키멀은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크리스 락이 처음 농담을 던졌을 때 시상식에서 비쳐진 윌 스미스와 아내 제이다 스미스의 다소 상반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다른 참석자들과 같이 윌은 분명히 농담에 꽤나 쾌활하게 웃고 있었고, 반면 제이다의 표정은 굳이있었다. 그 이후 연단에 서있던 크리스 락을 비추던 시상식 장면에 윌 스미스가 올라가 크리스를 가격한 모습을 보였다. 윌이 웃었던 시점과 가격한 시점에서의 감정과 행동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원래 윌 스미스가 웃고 즐기다가 아내 제이다의 표정을 보고 돌변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생각이 사실이라면 윌의 폭력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연출된 것이라 더 큰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찰날의 순간마저 진실은 윌 스미스 외에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윌 스미스가 휘두른 폭력에 대한 사회적 맥락
시상식에서의 해프닝이자 가족에 관한 이슈로 보는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사법체계의 맥락에서 보는 시각이 더 크게 주목을 받는 듯 하다. 미국의 법률 전문가들은 윌 스미스의 폭력을 명백한 범죄로 보았다. LA 경찰국(LAPD)은 이 사건에 대하여 당사자인 크리스 락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에 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따라서 기소 가능성도 낮아졌다. 크리스 락은 공식적으로 윌 스미스를 고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남가주대학교 법학교수 조디 아머(Jody Armour)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윌 스미스가 기소되지 않으면 사법 체계의 신뢰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개적으로 행해진 명백한 범죄행위가 어떻게 형사적 처벌을 초래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연예인과 비연예인에게 다른 기준이 적용되나요? 분명히 우리는 이것이 그러하다고(다른 기준이 적용된다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인식이 우리의 사법 체계의 정당성과 신뢰성에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기사 원문)
유명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사법당국마저 그 영향력에 의해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 그리고 유명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으면 관련 범죄에 대해 사법권이 개입하지 않고 처벌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킬 것이라는 점이 미국 사회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심각성 중 하나이다. 그래서 당사자인 크리스 락이 고소를 하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협조가 없어도 범죄에 관한 수사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며 유명 배우 짐 캐리가 자신이라면 윌 스미스를 고소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미국 사회에서의 상식적인 인식으로 보이는 것이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인 세상에 대한 경고
공교롭게도 윌 스미스 논란은 미국과 한국에 전혀 다른 반응을 일으켰다. 가족을 위해 행동에 나선 윌 스미스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은 어떤 면에서는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맞을 짓을 했다"라는 표현 속에는 과거 크리스 락이 보여주었던 행적을 포함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에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뭇매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의 소년 시절 미국사회를 표현한 "모두는 크리스를 싫어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던 것을 생각하면 부적절했던 언사였음을 고려할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 "맞을 짓을 했다"에는 다소 그의 외형적 이미지도 포함된 듯 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나 동네에서 맞고 자란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듯 그가 평소에 보였던 사려깊고 인간적인 부분보다도, 얼굴이나 말투, 체형 등에서 보여지는 "만만한" 이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만 하다. 농담을 던진 사람이 크리스 락이 아니라 윌 스미스 같은 얼굴 반듯하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쉽게 주먹을 휘두를 수 있었을까?
가족에 대한 모욕은 참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면 똑같이 폭력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인터넷 상의 글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는 점은 자칫 폭력이 정당화되기 쉬운 문제로 옮겨갈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가족이나 재산을 건드린 것에 대한 응징을 똑같이 되갚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심지어 윌 스미스의 주먹질이 가족을 위한 정의를 실현한 것이라 생각되어 지지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윌 스미스 개인의 차원에서는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체가 전부 윌 스미스와 같은 행동이 용인되고 지지받는 사회라면 어떨까란 질문을 반드시 해야할 것 같다. 나와 나의 가족이 소중하기 때문에, 나의 영역을 건드리면 주먹으로 응징하겠다는 생각과 대응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는 세계를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세상에서, 그 세상을 유지하는 최소한도의 규칙이 적용된 시스템인 법과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윌 스미스의 행동은 오늘날의 보편적 인권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그 자체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세계 보편적 가치로 인정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로 결속된 제도와 질서는 공화주의를 기반으로 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기초이다. 윌 스미스에게 공화주의까지 들먹여야하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는 분명 미국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고 그의 말과 행동은 더 큰 파장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그의 폭력에 찬성하는 반응들을 봤을 때) 그 무게가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행 법과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는 법과 제도를 파괴하더라도 즉각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정당화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사법질서를 건너뛰고 무차별적 처벌을 허용한 필리핀 두테르테 정권이 대표적인 예이다. 마약사범에 대한 강력한 법적 처벌이 가해지지 못하는 사회적 모순을 국가원수의 초법적 행동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에 사람들은 지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후세대의 짊어질 무게가 된다. 마약사범을 총살하면 마약문제는 사라진다고 우리는 장담할 수 있는가?
윌 스미스와 크리스 락의 대립은 가치의 대립이다. 나와 가족을 건드리면 주먹이 나갈 수 있다는 개인주의와 자신을 건드려도 주변을 살펴야 한다는 공동체주의의 충돌이다. 윌 스미스의 주먹 앞에 크리스 락은 주먹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발언을 사과하며 시상식에서의 발언을 이어가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이성이 무너진 인간과 이성이 지켜낸 인간이 한 공간에 존재했다. 크리스 락이 똑같이 주먹질을 했다면 시상식은 다시 없을 난장판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그가 지켜낸 것은 아카데미 시상식과, 자만에 빠지지 않는 유명인들에 대한 조롱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전통과, 상식과 이성을 기초로 한 공존과 존중이 지배하는 공동체, 즉 공화주의적 가치이다.
한국드라마에서는 종종 아이가 얼굴에 상처가 날 정도로 학교에서 싸우더라도 "이기면 됐다", "잘했다"라는 식으로 드라마 주인공이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보인다. 아이에게 놀림을 하면 싸움은 정당화된다. 싸움을 누가 먼저 걸었느냐 의 원인을 빼고 보더라도 기왕 주먹질을 해야하면 맞서서 싸우기도 해야하고, 가급적이면 이기라는 식으로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뒷감당은 대체로 부모가 학교를 찾아가는 식으로 해결을 묘사한다. 민주공화국이자 모든 권리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은 현실 세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는가? 같은 곳에 사는 사람이 시끄럽게 했다고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험악한 시대가 윌 스미스를 정의로운 자로 평가하는 현실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까? 나와 내 주변에서 이제는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자체로 소중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