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국방비 증가 선언에 대한 충격과 놀라움을 해외 언론과 국내 언론은 다르게 해석했다.
- 해외 언론은 국제사회의 오랜 요구에도 미온적이었던 독일의 유럽 방위 리더십의 중대 변화로 보았다.
- 국내 일부 언론은 '재무장'이란 단어를 강조하여 과거 나치의 재무장을 연상시켜,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군비경쟁과 갈등 조성의 논리를 펼친다.
- 재무장을 주도하는 것은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다.
-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독일의 군사력 증대 선언이 아니라, 유럽의 국제관계와 독일의 정치사회적 구조를 간과하며 전범국 운운하는 언론의 보도경향이다.
지난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세계 언론은 독일의 중대한 선언에 주목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고, 러시아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를 지지하며,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정부의 결정을 발표했다. 세 가지 모두 독일의 대외정책의 큰 변화를 나타내지만, 특히 마지막 국방비 지출 증가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중대한 움직임으로 보았다.
미국, 영국 등 해외 일부 언론에서는 독일의 국방비 지출 증가 선언을 "충격적", "놀라운", "기절초풍" 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대한민국에서는 '독일의 재무장(rearmament)'이라는 키워드가 국내 기사 및 보도의 제목을 장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블로그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독일의 재무장이라는 주제로 여러 컨텐츠가 재생산되었다.
특히 독일의 재무장에 대한 국내 언론의 해석은 과거 나치 독일의 재무장과 결부되어 상상을 하게끔 만들었다.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재무장'에 대해 과거 나치의 역사를 반드시 언급하여 논리를 펴고 있다는 점이다. 한 칼럼에서는 국제 분쟁 상황에서 독일의 재무장을 세력균형의 붕괴이다, 국가간 충돌로 또 다른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또 하나의 전범국인 일본"까지 끌어들여 동아시아의 군비경쟁과 불안을 야기한다는 식으로 해석했으며, 또 다른 언론 기사에서는 "역사의 반복", "독일의 부활", "지정학 폭풍"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들로 장식했다. 다른 언론 기사에서는 대놓고 "전범국가의 족쇄" 따위의 표현을 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각한 '어그로'이다. 현 유럽의 국제관계의 특성을 간과하고,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현실을 엉뚱하게 투영하여 독일의 대외정책을 일방적인 결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독일의 재무장'의 의미
독일이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하는 배경에는 유럽 중심의 안보정책 강화라는 필요성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1992년 EU 창설 이후, 공동안보방위정책(CSDP)이 신설되어 유럽의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에 EU 차원의 제재나 개입이 가능해졌다. 여전히 NATO를 중심으로 한 미국주도의 유럽 방위체제, 그리고 전쟁보다는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한 유럽의 상황에서 EU 회원국들의 국방비 지출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만 국제 테러리즘, 난민 유입,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등의 위기사태가 지역적으로 유럽차원의 공동 협력과 대응을 구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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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안보체제를 강화해야하는 더욱 직접적인 현실적 이유도 있다. 첫째, NATO의 핵심이자 핵보유국이었던 영국이 브렉시트를 단행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영국이 탈퇴하자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안보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유럽 통합 안보의 방향으로 노선이 더욱 분명해진 것이다. 둘째, 미국의 요구에 따른 NATO의 방위비 분담 문제이다. 보통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강요처럼 보였지만 실상 미국은 오바마 시절부터 유럽 회원국들의 NATO 방위비 분담 증가를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2014년 NATO 웨일스 정상회의로 2020년까지 회원국들이 GDP의 2%를 국방비 지출로 편성해야 한다는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었다 (전혜원, 2018, 11).
셋째,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기 주독미군의 감축계획이 발표되어 독일에게는 더욱 직접적으로 국방력 강화를 구상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황준범, 2022). 유럽 방위문제에 대한 미국의 비용 합리화 요구, 점진적이고 지속적이었던 유럽 통합과 외교안보, 경제적 역할 증대, 브렉시트, 러시아 문제 등이 유럽 자체의 안보전략을 강화해야 할 전략적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지난 2017년 영국을 제외한 25개의 EU 회원국으로 구성된 '항구적 안보국방협력체제'(PESCO)가 출범하여 EU의 군사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젝트가 착수되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 중에도 여전히 독일은 지난 2020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제한시켜왔다. 2020년 독일의 국방비는 528억 달러로 GDP의 1.4%에 머물렀다. 숄츠 총리의 선언대로 2%로 끌어올리면 754억 달러로 단숨에 미국과 중국에 이은 3위로 부상하게 된다(statista, 2022). 미국과 중국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지만 획기적인 증가 폭임은 분명하다. 과거에도 유럽의 여러 안보문제로 EU를 주도하는 독일에 대한 역할 증대는 끝없이 제기되었지만 독일은 요지부동이었다. 자국의 부상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과거사의 문제를 철저히 반성으로 가져가며 군비지출보다 국가간 협력으로 문제해결 방식을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기조가 유지되어 온 것이다. 또한 군사력 강화는 인구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독일의 인구는 1971년부터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 급감의 충격을 이민자로 완화해왔다. 병력 수급 문제를 전적으로 이민자에게만 의존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5,000개의 헬멧으로 상징되는 적극적인 안보문제 개입의 국내외적 요구는 독일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독일 언론 역시 정치권에서 국제문제를 외교나 도덕의 문제로만 풀 수 없는 현실적 주장을 소개하면서도, 대규모의 군사력 증강에 큰 반대와 저항이 기다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DW, 2022). 국방비 증대의 누적된 필요성에 총리의 선언으로 겨우 한 걸음을 뗀 것일 뿐이다. 또한 재무장은 어디까지나 과거 1992년 EU 창설과 유럽의 안보구축에 대한 오랜 논의 및 요구에 따라 점진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고, 2014년에 제시된 NATO의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것이며, 유럽 통합 안보정책의 일환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현 독일의 '재무장'은 나치 독일과 같은 혐오에 기반한 민족주의 자극이나 군국주의적 움직임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을 경계하는 것은 전 세계 뿐만 아니라 독일 자신이기도 하다. 독일의 재무장이 우려스러운 것이었다면 유럽의 경쟁자이자 파트너인 프랑스가 먼저 대응했을 것이다. 오히려 유럽의 재무장을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은 독일이 아닌 프랑스이고, 독일이 자제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독일과의 협력으로 유럽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숄츠 총리는 최근 미국 록히드 마틴의 전투기 구입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차세대 전투기와 탱크가 유럽, 특히 프랑스와 함께 만들어져야 함을 언급하며 독일 단독이 아닌 유럽 차원의 공동 안보전략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Sheahan and Marsh, 2022).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나치 독일과 같은 '재무장' 주장에 근거가 부족한 또 다른 이유는 독일의 군사력 강화 발표에서 불구하고 핵무기의 개발이나 사용에 대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일은 201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원전을 없애 2022년까지 완료를 명시하였다 (윤성원, 류재수, 김연종, 2017, 1475). 1980년대 환경운동과 체르노빌 사건 등으로 시작된 탈원전 논의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해, 탈원전 및 재생에너지 사용이라는 정책 기조를 만들었다. 독일의 에너지 소비 면에서 원자력은 2010년 22%, 2015년부터 현재까지 약 10% 내외로 축소되었다.
올해까지 가동되는 모든 원전을 폐쇄한다면, 원자력의 공백을 메꾸는 대체자원은 재생에너지나 천연가스밖에 없다. 더구나 독일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석유나 석탄같은 화석연료 사용은 환경문제로 늘리기 힘든 상황이다. 친환경 에너지 정책 전환의 과도기에 천연가스를 통한 에너지 자원 의존이 불가피했기에, 러시아와의 관계는 독일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안보, 경제 정책의 중요한 고려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환경정책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닌 기후변화에 공동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으로서 전반적인 흐름 속에 독일 역시 포함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맞이하였음에도 독일은 여전히 원전 가동중단과 친환경 정책을 이어갈 것을 천명했다. 미국의 NATO 방위비 분담요구, 브렉시트, 러시아 등의 문제 속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에는 독일의 단독행동이 아닌 국가간 긴밀한 협력에 기초하고 있다.
독일이 아닌 프랑스의 재무장?
안보정책 면에서 프랑스는 독일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1950년대부터 프랑스는 이미 유럽 차원의 안보체제 구축을 주장해왔고, 여기에는 당연히 프랑스 주도의 유럽안보, 프랑스 자체의 국방력 강화가 전제되어 있다. 브렉시트 이후 EU의 유일한 핵보유국은 프랑스이다.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은 국방력 증대라는 의미도 있지만, 미국이 끼치는 유럽 안보에 대한 막대한 영향에 제동을 거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프랑스는 NATO의 창립국이었지만 1966년 핵개발과 함께 NATO를 탈퇴했었다. 2007년 사르코지 대통령 시기 미국과의 관계개선 및 대서양 동맹을 통한 안보문제 해결이라는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NATO에 복귀했지만, 유럽의 공동방위군 창설 제안 등 독일과의 협력으로 유럽차원의 안보전략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지속되고 있다 (김상진, 2020). 유럽의 독자안보, 유럽의 재무장에 적극적인 것은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이다.
프랑스의 에너지 정책 역시 독일과 큰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전세계적인 탈원전 기조의 에너지 정책을 뒤집으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오히려 2050년까지 원전을 추가로 최대 14기까지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강지원, 2022). 원전의 운영이 핵연료를 사용한 무기개발과 관리, 사용과 절대 무관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 프랑스가 과거 핵개발을 통해 핵보유국으로 부상하고 이를 기초로 자극 및 유럽의 안보체제를 구상해왔다는 점, 그리고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프랑스의 중재 시도 및 유럽의 안보역량 강화에 분명한 행동을 보여온 점이 전세계적 기후변화 대응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프랑스의 경제, 안보 면에서의 선택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브렉시트, 미국의 요구,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EU는 유럽방위기금을 창설하여 안보방위정책에 대한 예산 투입으로 유럽 차원의 국방력 강화를 추진하고, EU 공동군 창설을 목표로 한 PESCO가 등장한 것은 독일보다 안보 독립이 더 적극적인 프랑스이다. 대표적인 극우정치인으로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해온 마린 르 펜이 나토 탈퇴를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군사력 증대가 전쟁을 유발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 논쟁거리이다. 하지만 적어도 군사력 증대로 인한 갈등과 전쟁가능성의 우려를 생각한다면, 프랑스의 움직임에는 왜 주목하지 않는가? 과거 '전범국' 독일의 화려한 이력이 문제라면, 나토 탈퇴 전력, 핵무기의 존재, 탈기후변화 정책, 미래의 나토 탈퇴가능성, 유럽 공동안보(PESCO) 주도라는 모든 면에서 최근 이력이 화려한 프랑스의 행보에 국내 언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몰아가기는 그만
독일의 선택은 분명 역사문화적인 요인들이 존재한다. 나토 중심의 유럽 안보 질서와 전통은 독일 단독의 군사력 증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제공해왔다. 그리고 독일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서는 과거 세계대전의 기억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역사를 과거사 청산과 반성을 중심으로 하여 다자간 협력을 정책 중심으로 삼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유럽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군사력의 증대나 사용을 최대한 삼가해오며 평화와 안정의 국제관계를 주창해 온 독일의 대외정책을 한 순간에 뒤집는 것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침은 물론 독일이라는 국가의 이익과 상반된다는 심각한 갈등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독일의 재무장을 제목으로 삼았다. 재무장이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역사적 의미가 너무나도 크게 다가오기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재무장이라는 단어 하나로, 21세기 독일이 다시 나치와 같은 군비 증강으로 유럽을 공포와 갈등으로 몰아가는 식의 해석, 그것을 바탕으로 난데 없이 일본과 중국까지 끌어들여 동아시아의 군비경쟁과 불안을 키워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뜨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해석으로 몰려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거꾸로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을 보며, 독일의 움직임도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다수가 사실로 몰아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될 때도 있다. 그 책임은 역사의 과오가 될 것이다.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전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면, 지금 안보분야에서 경쟁을 주도하는 국가와 협력을 주도하는 국가를 우리는 반드시 분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협력을 통한 전쟁 억지에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온 독일에게는 나치를 연상하는 재무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역대 대통령들을 통해 미국의 영향을 벗어난 독립성과 안보를 추구하는 안보정책을 추구하고, 심지어 나토의 탈퇴까지도 공약으로 내세운 정치인이 프랑스 정계에서 항상 강력한 대선 후보자로 등장하는 프랑스의 현상에 언론은 아무런 통찰을 주지 않았다. 재무장이라는 단어에 갈등을 불어넣는 필법 대신, 21세기 독일의 재무장의 본질에 대한 분석과, 그를 통해 시민들에게 대한민국이 군비경쟁을 주도해야 하는지 협력을 주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남겨놓는 필법이 언론이 그토록 말하는 정론직필이 아닐까? 협력과 공존의 지구촌을 만들어가기 위해, 전쟁 저널리즘에서 평화 저널리즘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