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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Apr 13. 2022

프랑스 대선에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실용주의와 프렉시트

지난 4월 11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치러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27.8%로 1위를 기록하고, 극우 정치인으로 알려진 마린 르 펜이 23.1%이 뒤를 따랐다. 르 펜의 정 반대에 서 있는 극좌 정치인 쟝 뤼크 멜랑숑이 22%로 맹추격했지만 3위를 기록하여, 2주 후 치러지는 결선투표에는 마크롱과 르 펜 사이에서의 선택만이 남아있다.

Image by Europe Elects

마크롱, 실용주의의 프랑스


마크롱의 과거 이력을 보면 투자은행 직원, 사회당 정부의 장관 시절 고용 증가를 위한 규제 완화 정책 입안 등 좌우를 가리지 않는 실용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그가 프랑스의 최연소 대통령이 되고, 그의 신생 정당인 앙마르슈가 2017년 총선에서 과반을 넘어선 배경도 프랑스의 좌우 정당들이 분열된 상황에서 마린 르 펜으로 상징되는 극우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다소 온건한 중도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용주의는 가장 광범위한 지지 기반이면서도, 강력한 지지층이 없는 이탈하기 쉬운 느슨한 기반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마크롱 정부에 대한 지지는 정책에 따라 심한 등락을 보였다. 그의 실용주의 노선은 때에 따라 극좌나 극우의 정책을 가져다 쓴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국방 예산 삭감, 부유층 감세, 노동 개혁 등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 모두 지지를 받지 못하고 논란을 키운다는 비판도 있다. 예를 들어, 마크롱 정부의 노동 정책에는 경영 악화에 따른 해고 조건 완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유연성 적용, 산별 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와의 임금 협상 등 친기업적인 정책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팬데믹 전까지 실업률이 하락하는 등 프랑스 경제가 호조를 나타내고, 팬데믹 이후에도 빠른 경기 회복을 보이면서 정책과 마크롱에 대한 지지도 변화를 보였다. 또한, 실업급여를 축소하면서도 노동자의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숙련도를 높이고, 여성의 저임금을 해소하기 위해 남녀간 임금격차를 완화할 것을 기업에 강제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이민자의 귀국 지원, 가족 이민 조건 강화, 난민 의료지원에 대한 제한 등 이민 장벽 자체는 늘리면서도 자동차, 건설 분야 등 인력난을 가진 산업계에 대한 노동 체류증 발급을 늘려 체류조건을 제공하는 정책을 세웠다. 전반적으로 보면 좌우를 넘나드는 행보인 것이다.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마크롱의 프랑스는 미국 주도의 질서에도, 러시아 및 중국에도 손을 뻗는 유연성있는 행보를 보인다.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서는 EU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기에 친유럽 성향을 바탕으로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독일과 같이 난민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또한 안보 면에서도 유럽중심의 통합군 창설을 제안하고, 미국 대신 프랑스의 핵우산을 통한 유럽안보 강화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노선과 유럽정책을 비판하고, 러시아와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자로서 푸틴과 회담을 가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환경 면에서도 2016년 파리기후협약에 가입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55% 감축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원전을 추가로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대외정책 역시 실용주의적 노선을 보이는 것이다.

극우와 극좌의 부상

마린 르 펜

이번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마린 르 펜은 21세기 프랑스 정치에서 가장 극단적이면서도 강력한 우파의 대안세력을 상징해왔다. 그녀는 프랑스 역대 정권들의 모호한 입장을 비판해왔다. 그녀의 발언들을 보면 사실상 프랑스의 현 정책의 대부분에 수정을 가해야 할 지경이다. 르 펜은 프랑스의 다문화주의는 실패했으며, 탈이슬람화와 이민 모라토리엄을 강조했다. 그리고 가입국간 자유로운 물적, 인적 이동으로 유럽의 시장 단일화로 국제적 영향력을 키우는 솅겐 조약의 탈퇴와 국경 통제를 부활할 것을 주장했다. 더 나아가 세계화에 반대하며 자유무역을 대체하는 보호주의로 전환하고, EU의 초국가주의 및 유로존, NATO의 탈퇴를 내세웠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오히려 우호적 접근으로 파트너십을 강조하며, 반러시아 정서를 비난하기도 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그녀 역시 러시아를 비난했지만, 3월 그녀의 지지가 정체되고 마크롱에 대한 지지가 상승했던 것을 보면 르 펜의 친러 성향은 분명히 아킬레스건이다. 종합해보면, 르 펜은 선명성이 더 높은 프랑스를 지향하고 있다.

장 뤼크 멜랑숑

3위를 차지한 장 뤼크 멜랑숑은 르 펜과 정반대에 서있는 좌파의 대안세력을 상징한다. 그는 노동인권 향상, 사회복지 프로그램 확대 등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부의 재분배 정책을 주장해왔다. 심지어는 연간 36만 유로(약 4억 8천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 100% 소득세를 부과를 제안한 것은 과거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이 100만 유로(약 13억원)에 75%의 소득세를 부과안을 만들었던 것보다도 더 대담하다 할 수 있다. 또한 의료비용 전체를 국가가 환급해주고, 이민법 완화, 여성낙태 및 동성결혼 지지, 대마초 합법화, 반러시아 정책 등은 르 펜의 극우와 대척점에 서있는 공약들이라 할 수 있다.


마크롱과 반마크롱의 대결, 그리고 프렉시트?

2017년과 같이 결선투표는 마크롱과 르 펜의 재대결이 되었다. 르 펜과 근소한 차이로 탈락한 3위인 멜랑숑이 르 펜을 지지하지 말도록 호소하면서도 마크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결선투표는 선택지가 두 개로 분명히 나뉘게 되었다.

어쩌면 결선투표는 마크롱과 반마크롱의 대결이 될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전통 공화, 사회당이 몰락하면서 좌우의 중도 성향은 2017년 마크롱에게 몰려갔다. 2022년에도 그러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2위인 르 펜과 3위인 멜랑숑은 분명 정치적 스펙트럼 상으론 극과 극에 놓여있지만, 흥미롭게도 이 둘에게는 마크롱이라는 공동의 경쟁자, 그리고 프랑스의 민족주의적 선명성이라는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세 번째 대선에 도전하면서 대안의 목소리를 키워왔다. 그들 모두 유럽 통합 정책에 비판적이며, 세계화를 반대하고, EU와 NATO의 탈퇴 등을 내세워 프랑스의 주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를 높여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둘의 이념과 정책은 지극히 다르지만, 마크롱 (혹은 중도에 '모호하게' 있는 프랑스)에 반대하는 위치에 서 있어왔다.

두 후보의 격차는 크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는 언론들이 적지 않은 만큼 프랑스는 미래에 대한 중요한 결정에 놓여있다. 마크롱이 승리한다면 이번 프랑스 대선의 최대 변수는 우크라이나인 셈이 된다. 그리고 프랑스는 경제, 안보 면에서의 유럽 협력 기조가 국익이라는 인식 속에서 EU의 질서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르 펜이 승리한다면 프랑스의 선명성과 독자적인 행보를 위한 '프렉시트'(Frexit)로 나아갈 수 있으며, 세계는 이것을 우려할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르 펜의 주장대로 영국에 이어 또 다른 핵보유국인 프랑스마저 유럽의 집단안보에서 탈퇴한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전쟁가능성이 낮다고 알려진 지금의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또 다른 태풍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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