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펀트 Dec 20. 2023

그해 우리는

2015년 그해

신규 교사인 것을 밝히면 혹여나 어린 나이와 부족한 경험에 만족하지 못하시거나, 걱정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을까 염려했었다. 실제로 아직  많이 부족해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정 반대였다. 학기초 한 학부모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이 학창 시절에 신규 선생님을 만날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갓 교사가 되신 선생님의 열정에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아이가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예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를 만난 게 아이들에게 행운이라고 말씀해주신 그 학부모님의 말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그분은 내게 같은 말을 해주셨다.

그해 아이들은 학기초부터 항상 등교하면 내가 있는 앞자리로 와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정말 놀라웠다. 난 분명 가까이 와서 인사하라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서로를 부를 때 "야"가 아니라 누구누구님이라고 불렀다.  놀랍고 내가 다 어색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인성 교육의 일환으로, '님'자를 붙이도록 교육하시는 선생님을 많이 봤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어색하고 신기했다. 가끔 "땡땡님 뭐하시는 거예요! 왜 때려요!" 하며 호칭만 님 자지 서로 싸우고, 언성 높이고, 욕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 덕에 존중과 배려가 학급의 문화가 되어 참 좋았다.


두 사례 모두 내가 가르쳤던 것이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행하는 언행이었다. 아마 5학년까지의 전임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셨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가르침을 받아 인사성과 예의를 자신의 습관으로 만든 훌륭한 아이들 본인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예쁜 아이들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물론 중간중간 소소한 어려움이야 있었겠지만,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정말이지 너무나 예뻤고, 귀여웠고, 소중했으며, 교실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그 생활이 행복했다.


예쁜 아이들과 좋은 학부모님들을 만났던 그 해는, 내게 행운이었다. 그 해 우리는 순수했고 행복했으며, 이제 그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었다. 아직도 종종 대학 입학, 취직, 군대 등 다양한 이유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코로나만 아니면 정말 당장 만나서 치맥이라도 쏘고 싶은 심정인데! 나의 교직 첫 해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그 해 우리들에게 참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도 인턴 생활이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