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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펀트 Oct 28. 2023

선생님도 인턴 생활이 필요해

첫 해의 기억

"선생님, 신발주머니 어디다 둬요?"


대망의 첫 개학일.

어떤 아이들을 만날지 기대와 설렘, 걱정과 근심을 가득 안고 출근을 했었다.

첫 출근 10분 만에 아직 잊을 수 없는 진땀 빼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한 두 명씩 본격적으로 등교를 시작하였는데, 복도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는 실내화 주머니를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선생님 신발은 갈아 신었는데, 신발주머니는 어디다 두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신규 교사였던 나는 복도에 있는 신발장까지 챙겨야 하는지 미처 몰랐다. 교실 안만 생각해서, 아이들이 자기 자리를 잘 찾아 앉을 수 있도록 자리배치표를 놓고 출석번호와 이름을 써두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오기는커녕 복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출석번호가 적혀있는 표를 복도에도 붙였다. 자기 출석번호를 확인해서 신발장에 신발주머니를 놓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신발장에 있는 번호 스티커가 다 낡고 헤져서, 자기 번호가 없다며 아우성인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애초에 신발장에 스티커를 붙이지 않는 소소한 실수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 만에 하나 스티커가 없다 하더라도 "일단 가지고 들어와서 자리에 앉아~"라는 말로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텐데, 그때는 별거 아닌 그 일이 참 어려웠다. 그 이후로 나는 매년 교실을 배정받으면 신발장과 사물함에 번호가 잘 붙어있는지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다.


"선생님, 음악실은 그 방향이 아니에요."


첫 주는 계속되는 어려움으로 가득했다. 개학날을 어찌어찌 보내고, 며칠 후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영어와 음악, 체육 등 교과 선생님께서 수업을 해주시는 과목의 경우 해당 교실로 데려다주어야 했다. 나는 나름대로 교내 지도를 살펴보며 영어실, 음악실 등 각종 교과실을 파악해둔 상태였다. 아니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영어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영어실로 데려가고자 했다. 아이들이 줄 서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줄은 몰랐다. 쉬는 시간 10분은 확실히 보장해주고 싶어서, 잘 놀게 한 뒤 종 치기 직전에 줄을 세웠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소란스러워서 줄 서라는 내 목소리는 묻혔으며, 아이들도 아직 자신의 새로운 번호와 위치가 익숙하지 않아서 줄 서는데 3분 정도가 걸렸다. 다급해진 나는 쟁쟁 걸음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다급히 영어실로 갔다. 수업에 1분만 늦어도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신규의 황당한 발상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맨 앞에서 빠르게 걸어가니 뒤에서 같이 반 뛰며 따라왔다. "와 우리 선생님이랑 같이 복도에서 뛴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체통을 지키지 못한 느낌이 들며 다소 민망하기도 했지만, 아이들도 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음악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이끌고 음악실로 가고 있었다. 건물에 계단이 여러 군데 있기도 하고, 학교가 다소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어서 방향을 잘못 잡았다. 앞에서 나를 따라오던 아이들이 "선생님, 음악실은 그 방향이 아니에요." "우와~ 우리 삥 돌아간다 오오~" 등 말하며 하하호호 웃기 시작했다. 아직도 음악책과 필통을 을 꼭 안고 걸어가며 웃음 짓는 그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이 생생하다. 기분 나쁜 웃음이 아니었다. 나도 이 반복되는 상황이 덩달아 어이없고 재미있어 같이 웃었다.


아이들에게 "얘들아 너네는 이 학교 생활 6년 차지? 선생님은 이 학교에 온 지 1주일도 안됐어. 길이나 구조는 너희가 더 잘 아니 너네가 선생님한테 알려줘야 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6학년 아이들이라 그런지, 혹은 그동안 베테랑 선생님들만 만나서 그런지, 선생님도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미가 돋보였나 보다. 아이들과 한층 가까워지고 웃을 일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3, 4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교생실습 다시 하고 싶어!' 혹은 '옆반에서 인턴생활하면 좋겠다!'였다. 비단 수업뿐만이 아니라, 행정 업무, 동료 교사와의 관계, 학급 운영, 학교 시스템 등 모르는 것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무조건 부딪쳐보거나 혹은 선배 선생님들께 이것저것 물어가며 일을 해야 하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과 유대감이 쌓였고, 점차 학급운영, 행정업무 등에 노하우가 쌓였다. 1년이 지나 아이들이 졸업할 즈음에는, 가히 가장 행복한 한 해 중 하나라고 꼽을 수 있을 만큼 학급 운영과 교사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고 6학년 생활을 최고의 한 해로 꼽아주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고군분투하며 노력했던 나 자신과, 함께 복작복작 교실 생활을 했던 우리 반 아이들이 참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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