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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아저씨 Mar 08. 2023

8. 제 인생을 책임지시던가요!

다양한 민원

"제 인생을 책임지시던가요!"


어떤 학생이 전화를 해서 나에게 한 말이다.

기분 좋게 한 말이 아니라, 항의성으로 한말이라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학 전산실에 근무할 때 수강신청프로그램을 담당한 적이 있었는데,

수강신청기간에는 전산실 직원이 전부 초긴장 상태가 된다.

프로그램, 서버, 네트워크 세팅을 속도를 최우선으로 모두 변환하고, 홈페이지도

수강신청 사이트를 별도로 만들 만큼 공을 들여서 준비를 한다.

어쩌면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씨를 뿌린다고 하면 금방 이해가 될까?

하지만, 해마다 수강신청이 시작되면 서버에 부하가 걸려 체감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많은 학생들이 인기강좌에 몰렸고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보면 1초에 수십 명이 학생이 동시에 저장되어, 실제로 0.1초 차이로 수강신청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학년으로 되어 보이는 어떤 남학생은 직접 전산실로 전화를 걸어와서 이렇게 따졌다.

"수강신청이 시작하자마자 클릭 3번에 이 과목을 신청했는데, 벌써 마감이라고 떠서 신청을 못했어요. 수강인원이 수십 명인데 이럴 수는 없잖아요? 저는 이 과목을 꼭 수강해야 되니, 수강인원에 넣어주세요. 아니면 제 인생을 책임지시던지요."

조금은 흥분된 상태로 원하는 과목의 수강신청을 성공하지 못한 탓을 학교 전산시스템에 돌리고 있었다.

"네.. 담당자입니다. 학생의 딱한 사정은 알겠으나 다른 학생도 상황이 동일합니다.

다들 수강신청이 시작되고, 그 과목을 우선 눌러서 순위 안에 들어온 것이라, 

학생을 넣어주려면 다른 누군가를 빼야 되는데, 그럼 빠진 학생은 또 인생이 달라지지 않겠어요?  학생은 1초도 안 되는 차이로 수강인원에 들지 못했고, 전산실 데이터베이스에 0.1초에 몇 명이 수강신청되는지 이력이 다 남아 있으니, 혹시 그것이라도 확인하고 싶으시면 방문해 주세요."




전화를 한 그 학생은  통화를 하면서 상황을 이해하였고, 그 학생의 인생을 내가 책임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고 마무리되었다.

매년 인기 강좌는 수강신청 서버에 0.1초 단위로 엄청난 인원들이 몰려서 저장이 되고, 1초도 차이가 안 나게 수강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서 매 학기 어려움이 있었다. 

학교 전산실 근처 PC방이 속도가 빠르다고 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차지했고, 수강신청기간에는 전산실 근처의 PC방이 때아닌 성수기를 맞이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매 학기 반복되는 학생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딜레이가 없도록 네트워크의 속도개선에 힘을 쏟았으며, 수강신청 장바구니 등의 아이디어로 기능을 추가하여 민원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들었다.

수강신청 하나에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고민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학생들이 원만하게 수강신청을 하도록 끊임없이 개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로 수강신청서를 종이에 써서 학과 사무실에 제출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한 지금이다.  

꼰대처럼 라뗴이야기하지 말라고요? 알겠습니다. 

언젠가는 Chat GPT가 알아서 개인별 맞춤형으로 수강신청을 해주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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