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물어봐 원하는 답을 해줄께
‘날씨 좋은 5월의 시작점에 갑자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날씨가 좋아서 아니 외출이나 해볼까 하는데 짙은 황사로 목이 메케해져서…… 이 모든 걸 날려줄 공포 놀이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어릴 적 친구들이랑 재미 삼아 공책에 O, X를 그려놓고 “분신사바 오잇테 구다사이”라며 연필을 쥐고 빙글빙글 놀렸던 추억 아닌 추억이 생각난 겁니다. 정확히는 황사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기보다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2004)를 정주행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 영화에서 서울에서 전학 온 유진이라는 학생은 일진 아이들로부터 심한 왕따를 당하던 중,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저주를 내리고픈 마음에 죽음의 주문 ‘분신사바’를 외쳤고, 다음 날부터 그 아이들이 한 명씩 죽어 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안병기 감독의 ‘여고괴담’(1998)에서도 주인공은 공포의 주문, ‘분신사바’를 외치는데, 도대체 ‘분신사바’가 뭘까요?
분신사바? 묘하게 일본어 같죠?, 그런데 ‘분신사바’라는 말은 일본어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블로거는 분신사바의 ‘사바’가 아마도 불교에서 속세를 의미하는 ‘사파(娑婆)’가 아닌가 하는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발음은 사바가 아니라 샤바가 되지만 한국 사람들이 샤바를 사바로 발음한 거라는 거죠. 하지만 그다지 설득력 있어 보이는 주장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분신 사마(分身様)’였는데 ‘분신사바’가 된 거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소녀들 사이에 ‘분신사마(分身様)’ 놀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으로 일본에서는 2005년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의 일본상영을 계기로 일본에서 ‘분신사마(分身様)’가 유행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원조가 ‘분신사바’이고 그게 ‘분신사마’가 되었다는 거죠. 참고로 분신사마가 일본에서 상영되었을 때의 제목은 코쿠리상입니다.
그럼 일본에도 없는 ‘분신사바’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일본의 위키 백서 등에서는 1890년 전후로 유행하던 ‘코쿠리상(コックリさん, 狐狗狸さん) 놀이’가 1920년경 조선에 들어와 ‘분신사바’가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코쿠리상(コックリさん)’ 놀이가 ‘분신사바’와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코쿠리상(狐狗狸さん)’은 한자로 ‘여우 호(狐)’ 자를 쓰지만 영험하다고 믿는 동물이면 뭐든 상관없었을 겁니다.이치야나기씨는 일본근대기에 유행하던 코쿠리상과 천리안이라는 오컬트 놀이를 연구한 심령서를 학술적으로 연구한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일본에서 등장할 당시 이 놀이는 가는 대나무를 끈으로 묶어 대나무 발을 삼각대 모양으로 벌려 세운 후 채반이나 보자기로 덮습니다. 그리고는 참가자가 그 위에 손을 올리고 “코쿠리상, 코쿠리상 오이데구다사이(こっくりさん、こっくりさん、おいでください)”라고 외치면 영적 존재가 답이 있는 방향으로 삼각대가 흔들린다는 놀이입니다.
주로 일본에서는 숫자나 히라가나가 써있는 종이를 깔아놓고 10엔짜리 동전에 손을 올려 주문을 하면 영적 존재가 질문에 대한 답을 손가락을 움직여 가르쳐주는 놀이입니다. 영적 존재를 불러들이는 도구는 삼각대가 되기도 하고 10엔 자리 동전이 되고 하고 다양합니다. 단, 게임 도중에 참가자가 손을 떼버리면 코쿠리상이 화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답을 다 들은 후에는 “코구리상 아리가토고자이마스 오하나레구다사이(こっくりさん、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お離れください:코쿠리상 고맙습니다. 떠나주세요)”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이 말을 잊어버리면 참가자에게 코쿠리상의 영혼이 들러붙을 수 있다는 섬뜩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공포 놀이는 민간에서 전해지던 테이블 터닝(Table-turning)의 일종으로 빙의를 통해 신탁을 얻는 겁니다.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적 존재를 불러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놀이가 의외로 많습니다. 일본 근대학자들은 이 ‘코쿠리상(コックリさん, 狐狗狸さん) 놀이’가 일본 고유의 놀이가 아닌, 1884년경 미국에서 전래한 놀이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달리 1700년경 일본 대도시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민간 주술놀이가 1880년 이후 여우 대신 죽은 영혼을 불러오는 형태와 결합하면서 분실물 찾기,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결정할지 말지는 묻기 위한 주술놀이로 변화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공포 놀이를 혼자서 몰래 하다가 인격이 돌변하여 자살을 도모하거나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집단으로 하면 괜찮은 걸까요?
1989년 11월, 후쿠오카현의 어느 중학교에서 이 공포 놀이를 집단으로 진행하다 패닉상태에 빠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영적 존재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금지된 욕망과 억압된 무의식이 분출하는 장(場)으로 변신하는 이런 공포 놀이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너무 자극적일 것 같으니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