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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24. 2024

신주쿠 빌딩숲 속 오니를 섬기는 신사

여전히 한국인으로 북적이는 일본 도쿄. 그중에서도 도교 도청이 있는 신주쿠(新宿)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한 곳일 겁니다. 흔히 사람들은 신주쿠를 지역 이름으로만 알고 있지만, 신주쿠(新宿)는 도쿄의 가장 큰 구(区) 중 하나인 신주쿠(新宿区)의 지역명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찾아가는 신주쿠는 도쿄도 신주쿠(東京都新宿区新宿)인 셈입니다.



나리타공항을 오가는 직행버스는 물론 요코하마, 가마쿠라 등 도쿄 근교로 가는 거의 모든 특급전차가 정차하는 JR 신주쿠(新宿)역 주변에는 유명 백화점, 각종 유명 브랜드숍, 호텔, 식당, 거기에 일본 최고의 유흥지, 가부키초(歌舞伎町)까지 자리를 잡고 있어 그야말로 “당신이 뭘 원하든 이곳에서 다 해결해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단연 신주쿠입니다. 제가 신주쿠를 좋아하는 건 신주쿠의 화려함이 아닙니다. 오사카에 살던 저는 도쿄에서 학회가 열리면 호텔비도 절약할 겸 신주쿠행 야간버스를 타곤 했습니다. 그러면 새벽 6시경에 신주쿠에 도착하는데, 아직 전날의 술기운이 남아 있는 메케한 냄새 속에 들려오는 필리핀어, 중국어, 베트남어, 한국어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 무리 속에서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혼종일지 몰라도 저는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신주쿠가 그냥 좋았습니다. 신주쿠의 매력은 뭐든 받아들이는 포용력일 겁니다.




에도시대, 그러니까 약 400년 전부터 신주쿠는 대형숙박 시설(内藤新宿), 영주의 대저택, 사찰, 사원 등이 모여 있는 번화가였습니다. 근대 이후 신주쿠에 여러 철도역이 개설되고 패전 이후에는 전후복구사업에 노동자들이 몰려들자 이들을 위한 유흥·숙박업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상인회는 1948년 이곳에 가부키초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로부터 지금의 신주쿠가 탄생합니다.



그런데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각종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신주쿠 가부키초 일번가(新宿歌舞伎町一番街)가 아닙니다. JR 신주쿠(新宿)역에서 가부키초(歌舞伎町) 방면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신주쿠 구청이 나오는데, 거기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지금까지의 시끌벅적한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붉은 단청이 인상적인 ‘하나조노(花園神社) 신사’가 나옵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화려한 색깔로 시선을 사로잡는 하나조노(花園神社) 신사와 달리 높은 빌딩 사이로 무성한 녹음(綠陰) 속에서 돌로 만들어진 도리이(鳥居)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조노(花園神社) 신사


‘하나조노(花園神社) 신사
‘하나조노(花園神社) 신사


‘하나조노(花園神社) 신사의 내부


빨간 도리이를 지나면 ‘어, 신주쿠에 이런 곳에 신사가?’라는 놀라움과 함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물들이 나타납니다. 이곳이 3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나리키오 신사(稲荷鬼王神社)’입니다.


혹시 알아채셨을까요? 이 신사의 이름에는 악행, 저주를 서슴지 않는 ‘오니(鬼)’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걸.....알아보니 '오니(鬼)'를 왕으로 모시고 있는 일본 유일의 신사라고 합니다. 

 

어떻게 일본의 농경의 신, 이나리(稲荷)와 오니의 왕(鬼王)이 신사에 함께 있는 걸까요?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지역에 살던 한 백성이 쿠마노(熊野)로 참배하러 가던 중 병을 얻었는데, 쿠마노의 오니의 왕(鬼王)을 모시는 신사에 참배했더니, 병이 거짓말처럼 나았다고 합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고향으로 돌아와 귀왕(鬼王)을 신사에 모시게 해달라는 청을 하였고, 그의 간절한 간청이 받아들여져 이나리 신사에 오니를 모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린 간단히 청을 받아들였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어쨋든 오니와 가미가 사이좋게 자리잡은 신사라는 겁니다.


이나리키오 신사(稲荷鬼王神社)


그런데 이 신사의 통합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경내의 다른 쪽 입구에는, 상업의 신인 에비스(恵比寿) 신을 모시던 미시마 신사(三島神社)도 있습니다. 화재로 신사가 불타버리자 갈 곳을 잃은 미시마 신사(三島神社)가 이나리키오 신사(稲荷鬼王神社)의 경내 일부를 재임대받아 이곳에 들어서게 된 거라 합니다. 

   이 경내에는 ‘아사마 신사(浅間神社)’도 있습니다. 이 신사는 메이지 이전까지는 경내에 이었는데, 1894년에 이나리키오 신사(稲荷鬼王神社)와 합쳐졌다고 합니다. 이 신사는 정원사나 분재, 원예업을 하는 분들을 위해 특화된 신사입니다.


三島神社


 아무래도 원예업을 하시는 분들은 거리나 숲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 그런지 거리의 안전을 위한 부적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 신사는 특히나 후지산에서 가져온 바위로 쌓은 탑이 유명합니다. 

   이 탑이 유명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바윗돌을 보내와 지금은 신사 사무실보다 높은 후지산 바위탑 2개가 생기게 됩니다. 바위탑 사이를 지나가면 후지산 가운데를 통과하는 것과 같은 효험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하루에 100명 이상의 참배객들이 모여든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이 신사에는 독특한 풍습이 전해지고 있는데, ‘쓰다듬어 주기(撫で守り)’와 ‘두부 끊기(豆腐断ち)’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몸살 기운이 있으면 일본인들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쌀·무·두부’ 중 영양가가 높은 두부를 먹지 않고, 대신 신사에서 부적을 받습니다. 그 부적으로 환부를 쓰다듬으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나서 멀리서부터 이곳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나리키오 신사(稲荷鬼王神社)의 후지탑


참 특이한 것들이 많은 신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커다란 수조를 머리에 이고 있는 오니(鬼), ‘리키사마(力様)’입니다. 한국말로 ‘힘센 장사’라는 의미인 ‘리키사마(力様)’에서 이상한 물소리가 들리자 주인은 칼로 이 수조를 내리쳤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수조는 자신을 칼로 내려친 주인을 원망하고 저주를 내려 해를 입혔고, 이에 이나리키오를 신사에 봉납하였다는 것입니다. 신사에 봉납된 오니 얼굴의 수조가 밤만 되면 “아프다, 뜨거워”라고 앓는 소리를 내자 신사의 주지가 물을 뿌리며 돌봐주자, 인근의 아픈 아이들의 몸이 좋아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예 아이들이 잘 자라나길 비는 마음으로 수조에 물이 흘러가게 하고 있다고 하는데, 오니 임금님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가부키초에 자리를 잡은 이 거리의 아이들은 잘 자라날 겁니다. 이번에 도쿄에 가시거든 이나리키오 신사(稲荷鬼王神社)에 가보시면 어떨까요.


돌아오는 길에는 신사 바로 옆에 있는 ‘신주쿠 고르덴가(“ゴールデン街 )’에서 한잔하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심야식당의 배경지이기도 한 곳입니다. 

  1950년대 일본 뒷골목 선술집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신주쿠 고르덴가에는 약 200개의 작은 가게들이 상자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어 좀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사라져가는 낭만이라는 걸 느끼게 할 수 있으니 기회가 되신다면 가보시길 권합니다. 패전 직후 이곳에는 나카가미 겐지와 같은 유명 작가, 시인,  문화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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