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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월 Apr 20. 2023

공감의 희열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공감의 부재에 울고 공감의 실재에 웃는다.

나는 왜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공유하는가?


개개인마다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에겐 말하는 행위 자체가 아드레날린 분비의 역할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감정의 교류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이며 감정을 소유하여 태어난 동물이기에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있는 한, 감정이 우리 몸에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때론 우리가 심적으로 지칠 때, 감정 지지대의 부재를 원인으로 둘 수 있다. 감정의 공감이야 말로 인간이 원만히 살아갈 수 있는 주된 요건중 하나가 아닐까.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직장인 1225명을 대상으로 ‘직장인과 스트레스’ (2020)에 대해 조사한 결과,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은 ‘상사, 동료와의 인간관계’ (25.2%)이다. 이는 다음 순위인 23.7%로 육박하는 ‘과도한 업무량’ 보다 높은 원인으로 손꼽힌다. 이에 따라 사회생활을 할 때 인간관계가 스트레스에 일조하는 수치를 얼핏 잡아본다면,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증명해내곤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 존재이다. 치유보다 상처가 더 많다면, 혹은 삶에 치유할 여유조차 없다면, 그것은 마음의 과다출혈로 인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의 치유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공감의 힘이자 공감이 주는 희열이다. 특히 감정적인 공감은 이로 말할 수 없는 내적친밀감과 마음의 평안을 준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다양한 친구들 무리에서 유독 만나면 기가 빨리는 친구와 에너지가 충전되는 친구가 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 두 녀석 중 한 명은 내가 하는 이야기에 몰입을 하여 맞장구를 쳐준다. 구태여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왜인지 이 친구에겐 더 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또 신이 난다. 반대로 다른 이 친구는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가 한 번씩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근데 그건 어쩔 수 없지 않나? 네가 더 이해하고 잘해야지.‘ 맞는 말이다. 근데 이것이 정령 내가 필요한, 아니 듣고 싶은 말인가?


정답은 없다.

사람은 성격이 모두 다르고 또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상황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겐 채찍 같은 현실적인 조언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당근 같은 감정적인 공감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치유는 만족스러움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당신은 당근이 좋은가 채찍이 좋은가?


인간은 애석하게도 여실히 용기 내어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구태여 공감을 위해서 꺼낸 말이 아닐지라도 공감을 이뤄낸다면 금상첨화다. 어쩌면 용기를 내어 숨겨둔 말을 하는 이유는 내 마음과 감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라서가 아닐까?


하루는 속상한 마음과 부분을 직장동료들의 회식자리에서 비춰낸 적이 있다. 딱히 공감을 바라고 한말은 분명 아니라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공감뿐을 바라고 한말 같다. 일종의 '저 힘들고 억울해요, 저를 이해해 주세요' 라는 이야기였다. 


깊은 마음속 작은 골짜기에서 꺼낸 감정이라면 공감이 주는 희열에 목마른 것이 가능성일 크다. 그러니 우리는 언젠가 누군가 유독 용기 내어 꺼낸 이야기를 세심히 들어줄 필요가 있고, 또 가능한 그 마음에 공감을 해줄 의무가 있다. 그래야지만 언젠간 나도 누군가에게 곯아가는 마음을 용기 내어 꺼낼 수 있고, 공감을 통한 치유를 얻을 수도 있다.


심리학적으로 심적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 감정을 이해하기와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이다. 오늘도 용기 내어 당신의 힘듦을 나눴다면, 당신의 용기를 칭찬한다. 부디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랬듯이,  이 순간 당신의 마음을 깊이 공감을 하여 위로를 건네는 누군가가 곁에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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