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목소리
무던히도 헤매던 지난 8년, 나는 나 자신과 싸워왔다.
정확히는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말들과 싸워온 것이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렇게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많아봤자 "속마음"과 "입 밖으로 내뱉는 마음" 이 두 가지가 존재했던 삶이었다. 내 머릿속 안에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내 안에는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목소리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 걸까?
때는 바야흐로 2015년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이 그렇듯, 나의 몸도 신체적 변화가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마르고 기다란 체형이었던 나는 음식의 영양소나 열량, 포만감 등은 등한시하고 넘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겨루기를 하며 누가 누가 점심에 많이 먹나 자랑하듯 각종 음식을 어마무시하게 먹었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잠만 잤다. 그해 여름, 나는 6개월 내 4cm가 컸다.
키와 함께 커진 건 체격이기도 했다. 허벅지 사이가 맞닿는 느낌, 의자에 앉으면 접히지 않던 내 뱃살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자연스러운 여성의 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우러러보던 소녀시대의 늘씬한 다리, 같은 반에 인기 많은 여자친구의 교복핏, 그리고 주변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요즘 잘 먹나 보네~" 등의 말... 사회는 내가 여성의 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부정하는 듯했다.
그렇게 비로소 내 안에 또 다른 "사회의 목소리"가 생겨났다.
"사회의 목소리"의 힘은 어마무시했다. 사진에 찍힌 나를 볼 때면 속삭였다 '어우 이 턱살 좀 봐, ' '다리가 이게 인간의 다리야?' '허벅지 봐.. 팔뚝살이랑..'
싱그러운 나만의 청춘의 모습이 담긴 사진 그 자체로 행복해하지 못할 망정,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것 혹은 내가 아닌 것에 대한 목소리의 볼륨을 키워왔다.
*본 글은 어떠한 식이장애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시각 자료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신체의 이미지나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