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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May 16. 2023

분만실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아빠들을 위하여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는 법 -6

  아내의 뱃속에서 꼬물꼬물 자라나는 게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결혼식을 올리기 전이었지만 나는 좋았다. 결혼을 약속하고 잠시 방심(?!)한 틈에 아이가 생겼고 어린 우리는 결혼준비에 바빠 아이를 맞이하는 게 어떤 일인지 열심히 알아볼 여력이 없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아들을 키우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길 괜히 듣고 난 뒤였다면, 산부인과 의사의 그 말이 그렇게 반갑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아빠가 되고 처음 떠올려본 나의 아빠


  그때 내가 처음 떠올려본 '아들의 아빠'에 대한 첫 이미지는 당연히 내 아빠, 아버지였다. 우리 아빠는 지금 좋은 아빠다. 하지만 좋은 아빠였는지는, 다 큰 아들인 내가 평가하기 조금 어렵다. 성인이 되고도 아주 오랜 시간을 아빠가 남겨준 숙제같은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며 살았다. 아빠는 어린 내가 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아빠는 때로 질풍처럼 무섭게 나를 나무라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우는 게 아니라고 버럭 소리지르곤 했다. 아빠는 아빠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가족에게 다정하게 다가가는 방법같은 건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밤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아주 평범한 그시절 경상도 아빠의 범주에서 크게 좋은 쪽으로 발달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빠 본인이 어느 날 내게 고백했던 것처럼, 아빠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빠의 아빠- 나의 할아버지-는 아빠가 중학생일 때 일찌감치 돌아가셨다. 아주 가난한 딸부자집의 외동아들인 아빠는, 그때부터 세상의 소용돌이를 혼자 헤쳐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를 만나고 나와 내 동생을 만나고 나서도, 그 소용돌이가 잔잔해지는 날 같은 건 오히려 어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가 아들에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런 건 나보다도 더 기억할 근거가 없었던 게 분명하다.


부모의 변명, 부모


  다행히 어른인 나는 우리 아빠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감정표현이 서툰 아빠에 의한 반작용인지, 내 나름대로 다르게 커온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만실에서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며 세상의 모든 신들이 존재한다고 확신했던, 그 서성거리는 복도에서 나는 이미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수천 번 연습하고 있었다.


  건강하게 태어만 나 줘. 사랑해. 영원히 사랑할게.

  모든 육아에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아들이 7살이 되고 어느덧 아기같은 모습은 하나둘 사라져가지만-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는 내 첫 다짐은, 첫 마음을 매일 상기하는 것이다. 나는 수시로 아들에게 너의 건강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너를 만나 오늘같은 초저녁 햇살 아래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을 수 있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준다. 어쩌면 어른 끼리 그런 이야기는 참 부담스럽고 느끼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는 아들의 눈빛을 보면, 아들은 분명 내 마음 그대로를 느끼는 것 같다.


  처음 그날 그 마음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해주는 아빠가 되자.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스킨십이 늘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저 멀리서 하는 건 좀 어색한 일 아닌가. 안고 부비고 뽀뽀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우선 내가 행복해졌다. 인간의 살갗이 가진 온도의 힘은 정말 위대한데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가진 그것은 정말 세상 어떤 촉감보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아들만 안을 수 있다면 그날의 스트레스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나날들이 꽤 있었다. 물론...이젠 그렇게 오래 안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너무 무거워졌지만....


  안아주는 아빠가 되자. 서로 만지는 사이가 되자. 

  그렇게 해서 아들과 허물없는 육체가 되자. 그것이 내 두 번째 원칙이었다.


  그렇게 아들의 발달과 함께 자연스레 살아가다보면, 어느새 아들과 함께 뛰는 아빠가 된다. 아들의 심장 박동 리듬대로, 아들의 두 다리에 힘이 붙는대로, 그가 세상을 헤치고 나가고 싶어하는대로, 나는 그 길을 함께 뛰며 위험한 것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동시에 같은 호흡으로 그 마음을 느끼는 존재가 된다. 처음엔 걸음마였고 그다음엔 뒤뚱뒤뚱이었고 지금은 축구고 수영이고 야구가 되었다. 아들은 아빠의 커다란 육체가 자신과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늘 알고있다. 그래서 마치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굴뚝청소부처럼, 자신의 육체도 조금은 더 대단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늘 느끼는 것 같다. 어린이집에 갈 때도 나와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킥보드를 타며- 자신의 육체가 삶의 근간이 되는 튼튼한 집이라는 걸 본인이 느끼며 크길 바랐다. 아이를 풀어놓고 휴대폰을 보는 날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은 아빠가 되는 게 본인의 건강에도 크게 나쁠 건 없다.


  늘 함께 호흡하는 아빠가 되자.

  나 자신에게도 영광 아닌가. 저 싱싱한 호흡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사랑하고, 안고, 뛰고, 그리고 마지막 내 원칙은 놓아주는 것이다.


  모든 육아의 목표는 자립이고 언젠가 나는 저 아이의 인생에서 사라질 존재라는 말을 나는 절절히 공감한다. 아쉽고 찡하기도 하지만, 그건 생태계의 순환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명한 원리이다. 그래서 언제나 어떤 결정이든, 나는 아들과 미리 계획을 세우고 미리 의논을 하고 그래서 그 결정이 현명하고 본인에게 이로울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의사소통을 시작하는 서너살 무렵,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아이를 잘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부분이 그럴까- 혼자 고민해보았다. 그때 나름 생각해낸 것이, 항상 모든 일정들을 미리 공유하고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자기 전엔 내일의 일과를 함께 그려보고, 아침에도 계획된 것들을 미리 통보해주고, 그 안에서 변동 가능한 것들은 의견을 듣고 그렇게 작은 결정들을 해나가다보면 혹여나 돌발변수가 생겨도 하루나 시간의 흐름에 대해 아이가 이해하게 되기에 떼를 부리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가 줄어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아이의 인생에서 조금 더 큰 결정의 순간에도 충분히 사전에 공유하고 의논을 했다면- 언제나 아들이 선택하는 그 길대로 놓아줄 것이다.


  물론...최근에는 한국의 교육체계에 대해 설명을 듣더니 대학교는 갈 필요가 없겠다고 스스로 선언했지만...그것도 결국 그렇게 된다면 그걸 내가 어떻게 방해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된다는 게 아이의 인생을 결정할 권리가 생긴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같이 산다는 게 꼭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낮동안 대부분의 시간 떨어져 지내더라도, 나에게 허락된 아주 짧은 기적같은 시간에 후회없이 사랑하고 안고 뛰는 게 하루 육아의 전부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생각한 하루를 같이 각자 보내고 돌아와,


  오늘 하루 참 멋진 날이었다 그치?

  우리가 공유한 하루에 대해 침대에 누워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날들을 하루하루 쌓는 것이 육아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를 잘 보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영어학원에 보내고 어디 대단한 곳에 여행을 가고 그런 것도 나름의 미덕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아들을 방임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참 별로라고 생각했던 우리 아빠와의 기억도 돌이켜보면, 그렇게 집앞 바닷가에서 헥헥대며 공놀이를 하고 돌아왔을 때의 행복함만은 아주 선명하다. 그리고 그 감각들이야말로 지금 내 인생을 지탱해주는 대들보다. 

(다니엘의 멋진 날, 이라는 책을 강력 추천한다.)



  별로 해주는 것 없지만 아들은 지금도 건강하고 잘 웃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덕분에 내가 행복하다. 그렇게 아빠가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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