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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Oct 04. 2022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

Part3. 생활자의 일상 : 꿈꾸던 일상 속에서



살다 보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우선순위로 두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미국 생활에서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으로의 이주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내려놓았던 것은 물욕이었다. 국내가 아닌 국외로 거주지를 이동하는 큰 이사를 앞두고 기존에 있던 짐을 버리고 가져가야 할 짐을 꾸리며 우리는 짐의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자각하며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가구나 전자제품들을 가져가지 않고 최소의 짐만 꾸려 미국으로 가기를 결정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기내 수하물 허용기준에 따라 꾸리기로 일찍이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짐을 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긴다고 신중하게 짐을 꾸렸는데도 세 사람의 옷만으로도 캐리어 몇 개가 금세 채워졌다. 한국에서 결혼식이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입던 정장, 트렌치 코트 같은 것들은 사치였고, 매일 입을 멜빵바지와 요가복,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빛을 가려줄 모자 같은 것들이 우선 순위가 되었다. 많은 것들을 담았다 빼기를 반복한 결과 사람 셋과 개 두 마리의 일년살이를 위한 짐으로 커다란 캐리어 7개가 꾸려졌다. 7개의 캐리어에 담긴 물건 만으로도 삶이 지속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내려놓음은 미국으로의 이주를 위한 짐에서부터 시작됐다.


 

미국으로 오며 두번째로 내려 놓은 것은 사회에서 불리던 이름이었다. 뛰어난 재주는 없었지만 스스로의 부족함을 일찍이 알아 노력했던 시간의 끝에 여느 소설의 제목처럼 대기업 다니는 이차장이라고 불릴 순 있었는데 미국에서 나는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었다. 이 곳에서 나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존재하던 모든 순간 오롯한 나로 살 수 있었다. 직책도, 직함도 없이 오직 내 이름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가며 나로 존재하는 순간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들이 있었던 반면 포기할 수 없었던 것들이 있었다. 포기할 수 없었던 첫 번째는 반려견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미국행을 택하는 것은 나이가 많은 13살 초코, 잔병치례가 많은 마음이를 생각할 때 적잖이 부담이 되는 일이었지만 아이들이 없는 우리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초코와 마음이는 우리에게 반려견 이상의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많은 리스크가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과 미국행을 택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고,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미국에서 잊지 못할 기억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었다.

 


미국 생활에서 포기할 수 없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경험이었다. 미국에서 우리는 남편의 학생비자로 체류했기 때문에 남편과 나의 신분으로는 어떠한 경제적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경제적 활동없이 소비만 하는 생활은 자주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하물며 한국 보다 배에 달하는 생활비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주 우리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예쁜 액자나 러그 같은 인테리어 소품을 봐도 우리의 재정상태를 생각할 때 사치스럽게 느껴져 있던 물욕조차 사라졌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사는 것은 욕심이었기에 침대도 프레임 없이 매트리스만 구입하여 사용하는 등 꼭 필요한 것들로만 간소화하여 생활했다. 집에는 식구만큼의 수저와 컵, 접시가 있었다. 마트에 갈 때마다 ‘이게 우리에게 꼭 필요할가?’ 두 번 세 번 생각하며 장바구니를 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은 포기할 수 없었다.

 


미국에 사는 동안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비용과 관계없이 가급적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덕분에 아이는 미국에서 아이스 스케이트, 코딩, 미술, 수영, 축구, 소프트볼과 같은 과외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칸쿤으로, 캐나다로,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미국 내 많은 도시로 여행을 하는 등 경험을 쌓는 일에는 과감히 투자했다. 그것이 우리가 모든 세간 살이를 정리하고 이 곳에 온 이유이기도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 무엇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 사회적으로 불리는 이름, 명함 따위는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경험하기를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길지 않은 우리 인생을 더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드는 선택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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