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구루 Aug 04. 2017

시간이 쓰다

정답 없는 세계에서 정답 찾기  



어렸을 적 나는 시간 부자였다. 열여덟이 될 때까지 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는 친구들 보다도 시간이 더 많은 편이었다. 방학이면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앉아 끝 모르고 질주하는 드라마 재방을 몰아보기도 했고 손톱만큼 작은 도미노를 세워가며 거실 전체에 도미노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



초등학교 하굣길 무더웠던 여름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15분 내리쬐는 태양이 눈부셔 발 끝만 보고 걸었던 시간은 정지된 화면처럼 느리고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고등학생이 되어선 학교 앞 슈퍼를 하던 승현이네 가게에 앉아 배가 불룩하게 불러오도록 새우깡을 먹으며 파리를 쫓기도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에 의해 어른이라 불린 나이가 되며 나의 시간 기근이 시작되었다. 다난했던 취업경쟁을 뚫고 입사 통지를 받았을 때 '이제는 나도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구나' 기뻐했지만 그때는 몰랐다. 입사가 곧 시간 노예의 시작인 줄을. 스물여섯 봄에 입사했던 나는 어느새 서른넷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



그동안 숱한 계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9 to 6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일상이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들 중 더러는 남았고 더러는 떠나갔다. 그 사이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입사 8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이따금 회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 아이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방향을 틀 줄 모르는 좀비처럼 앞만 보고 걸었다. 어느 날 82년생 김지영 씨처럼 보통의 날들을 살고 있는 내게 누군가가 말했다.



"둘째도 낳지 그래요~ 지금은 힘들어도 형제가 있어야지 아이가 너무 외롭잖아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아요 그래야 나중에 후회 안 해요." 그때 생각했다. 왜 나는 둘째라는 단어에 두려움을 느끼는가. 그때 알았다.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대상의 실체는 시간이었음을.



매일 아침 8시 아이를 어린이집 등원차량에 태워 보내고 평균보다 이른 퇴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날들. 퇴근과 동시에 아이를 만나 제2의 직장(집)으로 출근하지만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라는 신봉 철학에도 불구하고 저녁부터 자정까지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책을 읽어주는, 그러는 사이 단 30분도 아이에게 눈을 맞추지 못하는 하루들 속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토록 제한된 시간을 또다시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에. 시간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애정 하는 마음과 비례할 것인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 정답 없는 고민속에 천천히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아이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나처럼 직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러는 사이 계절이 지나 엄마의 나이가 될까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직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쓴다. 어쩌면 바닥의 통장잔고에도 대출을 해서라도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 내 연차를 내고 휴가를 떠나는 것은 지금 여기 두 발을 붙이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일 것이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자문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물음표만 남을 뿐이다.



지금 나의 시간은 훗날 무엇으로 씌여질까. 일주일의 오일, 내 인생의 7할을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저축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따금 슬퍼진다. 그래도 오늘은 그럭저럭 흘러간다. 이따금 웃고, 이따금 씁쓸해하면서. 그리고 해가 진 저녁이면 남편과 이야기한다.



우리 아이에게는 보통의 일상을 강요하지 말자고.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하고 월급쟁이 시간 노예로 살아가는 삶을 살게 하지 말자고. 그저 자신이 무얼 할 때 행복한지 알고 그 행복을 선택할 줄 아는 아이로 커준다면 그걸로 됐다고.



그래 어쩌면. 지금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못하지만 지금 이 시간이 아이가 선택할 내일의 행복을 만들어 준다면 그것또한 괜찮은 일이라며 스스로를 토닥여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따금 울고 싶다가도 또 잠깐 웃게된다. 그리고 굽어진 내 엄마의 등을 본다. 엄마도 이렇게 나를 키우셨을 것이다. 퇴근길 붉게 물든 노을 뒤로 젊었던 엄마의 시간들이 지나간다. 쏜살같이 날아가버리는 시간이 쓰다. 오늘도 그렇게 시간을 쓴다.





글과 사진 | B구루








  

작가의 이전글 부치지 못한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