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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Aug 01. 2017

부치지 못한 편지

잊히지 않을 존재의 부재에 대하여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어떡하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폐암이 진행 중이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부고였다. 요양병원에 계신 할아버지께 3주에 한 번은 인사를 드려야지 마음먹고 지켜오다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했던 첫 주말이었다. 예정대로 찾아뵈었다면 돌아가시기 전 날 마지막으로 얼굴을 뵈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몰려왔다.



병원에 도착하니 창백한 얼굴에 붉게 충혈된 눈의 어머니와 시동생이 보였다. 자식을 다섯이나 두신 할아버지의 장례식엔 손주 손녀들의 조문객까지 더해 내내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가족들도 점차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병원에 계신 할머니께는 할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알리지 않은 채였다.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의 별세 소식에 충격을 받으실까 봐 가족들은 차마 소식을 전하지도 못한 채 발인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이틀 째 되던 날, 친정엄마가 조문을 오셨다. 어머니께서는 이틀 내내 말수가 많지 않으셨는데 엄마를 만나곤 눈물을 보이셨다. 엄마는 말없이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손을 잡아주셨다. 자리에 앉으신 어머니께서 말을 이으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되었을까요? 생각해보니 제가 아버지께 손편지 써드린 것이 꽤 오래 전인 거예요. 뭔가 말로 전하기는 쑥스럽고 지금 아니면 하지 못할 말들이 많아 손편지를 써서 병원으로 부쳤더랬죠."



"아버지가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고. 다 그만두고 남은 시간 아버지와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직장 다닌다닌다는 핑계로 외롭게 병원에 모셔 죄송하다고. 사실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다고 편지를 썼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편지가 아버지 계시는 병원으로 가질 않고 다시 반송되어 온 거예요. 아버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다시 돌아온 편지를 아버지 손에 쥐어 드리고 '아버지 나 가면 꺼내서 읽어봐요 내가 아버지한테 편지 썼어요' 하고 왔는데 글쎄 읽었다는 말씀도 없으신 채 이렇게 가시니 너무 속상한 거예요."



친정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얼마나 좋으셔요. 아버지도 그 마음 다 받으셨을 거예요. 어떻게 손편지를 쓸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참 좋으시겠어요 이런 딸이 있어서. 너무 서운해 마세요. 그 마음 벌써 다 읽으셨을 거예요. 얘네들한테 항상 그랬어요. 어머니 아버지 하는 거 보고 많이 배워라. 열 마디 말보다 큰 교육이다."  



어머니가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셨다는 이야기는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얼마간은 침착한 모습이셨다가 또 얼마간은 서글프게 우셨다가 했다.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셨지만 아직 아버지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딸에게는 깊은 슬픔이었다. 그렇게 발인까지 마치고 3일간의 장례를 마쳤다. 북적이던 식구들은 시골 한 식당에 나란히 앉아 갈비탕을 나누어 먹고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뒤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언젠가 전하지 못한 말이 남아 마음속에 후회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굳이 손으로 건네어도 되는 편지에 꾹꾹 주소를 눌러쓰고 우표를 붙여 혹시나 날아갈까 등기로 부쳤다. 대만으로 여행을 가 있던 주말 어머니께 카톡이 왔다. "편지 잘 받았다. 정말 고맙다..." 좀처럼 표현이 없으신 아버님께서는 편지를 보고 눈물을 보이셨다고 했다.



잊을 수 없는 존재의 부재란 그런 것이다.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이별이다. 2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도 한동안 헛헛한 날들을 보내시겠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슬플 것이다. 할아버지는 부치지 못한 편지를 보셨을까. 편지는 보지 못했더라도 예순이 다 된 딸의 슬픔은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생전에 그러셨던 것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괜찮다... 떠날 때가 되어서 가는 것이다. 울지 말아라...'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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