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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21. 2022

초푸


코를 고는 남편과 함께 산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수면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니 날이 갈수록 짜증이 솟구친다. 신혼 때는 흔들어 깨웠었다. 시끄러워서도 그랬고 무호흡 증상이 나타나기에 혹여나 죽을까 봐 건드린 건데 다짜고짜 짜증을 내는 게 아닌가? 다음 날 아침 호되게 혼을 내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잠결에 너무 놀라서 그랬다고 작아지는 모습에 한 번 봐줬다. 뭐 그 뒤로도 몇 번 더 짜증을 냈지만 더 더 호되게 혼을 냈더니 이제는 안 그런다. 심지어 미안해한다.


결혼 10년 차. 얼마 전부터 나는 소파에서 혼자 잠을 잔다. 귀마개를 꼽고 잔 세월이 길어질수록 귀도 아프고 질 좋은 귀마개 값도 제법 나가는데, 귀마개 사는 배송비도 아깝고 해서 거실서 자기 시작했는데 잠자리는 좀 불편하지만 수면의 질은 훨씬 높아졌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잔다. 그렇다고 남편의 수면의 질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일단 코를  무호흡 증상이 오니까 당연히 피곤하겠고 건강도 염려스러운 데다가 아빠라면 자다가도 벌떡 깨는 아이들이 아빠한테 거의 파묻혀서 잔다. 옴짝달싹 못하는 남편은 디스크도 있다.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아침이면 곡소리를 낸다.


보통의 아침은 내가 가장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신랑이 와서 이제 그만 좀 일어나라며 깨우는데 그날은 내가 먼저 일어났다. 흔치 않은 일이다. 누워 있는 신랑 옆에 오랜만에 가서 누워서 이야기를 쫑알쫑알 시작했다.

“언니들이 남편 말 잘 들으라고 어쩌고 저쩌고”


“어윽 어디서 화장실 냄새가 나…”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다니 이내 대충 짐작하고 눈을 흘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푸세식 화장실”


나는 화를 낼 겨를도 없이 황급히 몸을 돌려 입을 막고 죽도록 웃었다.


너 죽도록 맞아볼래 진짜?


그렇게 서로 깔깔 웃고서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이 뒤에서 나를 부른다.


“초푸!”


이런 c…..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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