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 끝내자.
06:50분 알람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첫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8시에 일어났었는데, 나도 이제 새벽형 인간이 된 건가 하며 기특함을 만끽하는 중이다. 아이폰 수면 기능을 설정해 놓으니 패턴을 알 수 있게 됐다. 더러는 알람 음악이 좋아서 조금 더 들으며 누워있고는 하는데 그럴 때면 명상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코골이 남편 덕분에 소파 행을 자처해 몇 개월간 잤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아이들 놀이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마저도 방바닥에 카펫을 깔고 자는 거라 수면의 질이 좋지는 않다. 그래도 폭격기 소리를 견디며 자다가 깨느니 허리가 좀 아픈 게 훨씬 낫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건 불변의 법칙으로 둘째다.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안다. 아빠를 닮아 넓적한 발로 쿵쿵 쿵, 발목과 종아리의 경계는 거의 없는, 아가 때랑 별반 달라지지 않은 짧은 다리. 새하얀 피부에 찰랑거리는 머리는 부은 눈을 반이나 가리며 내게 온다. 내 몸 위로 역시나 쿵하고 포개져 나를 안아준다. 안아준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내려앉는 수준으로 꽉 껴안는다.
그럼 “안녕? 잘 잤어?” 하며 더 꽉 안아주고 볼과 코에 뽀뽀를 마구 한다.
8시가 거의 다 되어서 일어나던 첫째는 이제 깨우지 않으면 못 일어난다. 내가 깨울 때도 있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기도 한다. 애교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무뚝뚝 한 건 아니다. 몸에서 나오는 최대치의 애교를 장착하고 동생과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며 내게 와 안긴다. 주말에는 아빠가 운동 가고 없는 새벽에 귀신 같이 일어나 내게로 온다. 아이 둘 중 한 명이 거실 커튼을 열어 준다. 그렇게 우리의 아침 일상이 시작된다. 반려견 호두는 토이푸들이다. 우리 가족이 된지는 햇수로 2년이 됐고 태어난지는 24개월이 되었다. 화장실을 완벽하게 가리지 못해서 늘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문을 닫아놓고, 볼일을 다 마치면 잘했다고 칭찬을 듬뿍해준 뒤 보상으로 간식을 줬었다. 그런데 이제는 울타리도 치우고 혼자서 볼일을 보러 다니는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다.
밥을 새로 짓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더 있으면 한두 가지 반찬을 만든다. 그러는 동안 신랑은 식기세척기에 말라 있는 그릇들을 꺼내서 정리를 해두고, 아이들은 물이 담긴 보온병을 가방에 넣어둔다. 스스로 할 때도 있고, 나의 잔소리로 움직일 때가 더 많다. 내가 옷을 골라서 소파에 놔줄 때도 있고, 보통은 아이들이 골라와서 소파에 올려놓는다. 요즘은 아이들의 취향이 확고해져 가는 시기라서 특히 첫째와 마찰이 있고는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가 되니 아니 그전부터 나의 교육관은 갈팡질팡 자체였다. 뭐 거창하게 교육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지인 상태로 욕심만 많았다. 남들보다 뭐든 잘했으면 좋겠고, 앞서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학교에 가면 ㄱ, ㄴ부터 배울 한글을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배웠다.
남편과 나는 달랐다. 느긋하고 기다려주는 육아를 하는 남편, 늘 쫓기듯 불안한 육아를 하는 나. 당연히 교육관 자체도 극과 극이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책을 읽고 영어를 쓰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도 그랬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학원을 보내고 싶어 졌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교육에도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면서,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마냥 놀면 된다고 했다. 괜찮다 괜찮다 말해줘도 나의 불안은 휙 하고 부는 입김에도 흔들렸다. 물론 아무리 설득을 해봐도 꿈쩍도 안 하는 신랑에게 이길 만한 묘책은 없었다. 신랑을 믿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 번씩 이렇게 흔들릴 때면, “또 다 잊은 거야?”라며 다시 한번 아이들이 왜, 마냥 놀아야 하는지 찬찬히 살펴준다.
둘째는 언니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으로 옮겼다. ‘병설에는 프로그램이 부족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몇 년 전의 나였지만, 지금은 만족스러워하며 보내고 있다. 주말에 미술 수업을 교육문화관에서 듣고 있는 게 끝이다. 아이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 존중해주고 있다. 물론 뛰어노는 것만 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간의 변화다. 스스로의 불안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가 있었지만 꽤 안정적인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첫째는 과학에 흥미가 많다. 주말마다 재료비만 내고 교육문화관에서 수업을 듣고 있고, 피아노를 너무 배우고 싶어 해서 레슨을 받고 있다. 전부터 하고 있던 바이올린 레슨을 학원으로 바꾸고 추가로 미술 학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영어 영상을 보고, 흘려들으며 그 외 티비시청은 금지하고 있다. “엄마, 엄마.” 옹알이하듯 그렇게 유아기 때 처음 말을 배울 때처럼 천천히 스며들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줄 것이다. 격주에 한 번씩은 아빠와 축구를 하기로 해서 풋살화를 사주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축구가 추첨되지 않아서 선택한 결과인데 훨씬 더 만족한다. 그 선택이 이어져 한 달에 한 번은 FC새순이라는 축구 클럽을 만들어 공동육아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조금씩 각자의 생활 패턴에 적응하고 있고 나 역시 나의 삶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평소 아이들은 잘 뛰어놀아야 한다는 남편의 생각과 교육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는 내 생각이 적절한 선에서 잘 타협되어 행해지고 있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화살처럼 지나가고 있고 그에 못지않게 아이들도 훌쩍 성장하는 중이다. 하루하루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시간에 비례하여 아니 몇 배는 더 아깝게 변해가고 있다. 내 품에서 옹알이하던 아이들이 대화를 하고, 가끔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난 나를 보고 있노라면 세월이 그만큼 빠르게 지나갔노라 한다.
육아와 관련된 정보들을 각종 매체에서 관심 있게 보고 때로는 감정이입을 하며 눈물도 흘리고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마음만큼, 생각만큼 잘 실행되지 않는다. 망각의 주머니가 머리에 있는지 눈앞에 벌어지는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의 신경을 아프게 찌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이에 반응을 하고 어느덧 슈퍼 갑 엄마가 되어 있다. 이런 시행착오들의 연속이 나의 일상이며 앞으로의 미래일 것이다. 부족하고 부족한 엄마일 수 있지만 결코 육아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누구보다 원하고 원한다. 100점 엄마가 아니면 어떠리. 80점 엄마라도 그 80점만큼 아이들에게 꾸준히 주고 싶다. 상황에 따라 50점이 될 수도 90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고 한다.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끝까지 완주하는 거북이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