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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운 Feb 03. 2022

버티는 몸을 만든다는 것과 버티며 사는 것

로스쿨 수험보다 더 중요한 건 버티는 몸을 만드는 것

1. 로스쿨 생활을 거듭하며 깨닫는건 엉뚱하게도 법학이 아니라 건강의 중요성이다. 근근이 버티는 건 잘한다고 자신하며 로스쿨에 들어왔다. 영양제따윈 필요없고 밥만 잘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 달도 못가 뻗었다.

용하다는 영양제를 사서 먹었다. 약빨이 끝내줬다. 영양제와 홍삼으로 한동안 살았다. 그것도 한때였다. 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달리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없으니, 담배를 다시 입에 대고 자극적인 음식을 몰아서 즐겨먹었다.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몸은 더 엉망진창이 되었다. 지난학기 기말고사즈음 해선 수면패턴까지 엉망이 됐다. 진짜 큰일이 나겠다 싶었다. 스스로 느낀 건강의 적신호였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런 사람이 꽤 많았다.

거의 살려달라는 심정으로 킥복싱 운동을 시작한지 두 달이 되었다. 두 달 밖에 안 되었지만 만족도는 아주 높다. 살도 뺄 겸 음식도 집에서 해먹기 시작했다. 로스쿨 입학 후 지독하게 날 괴롭히던 소화불량이 사라졌다. 소화불량과 컨디션이 좋아지니 스트레스도 확연히 줄었다. 역시 어떤 영양제와 건강보조제도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을 이길 순 없었다. 개강하면 이곳 저곳이 아파야 정상인데 놀랍도록 컨디션이 좋다.

2. 2달밖에 하지 않은 운동이지만, 정말 놀랍게도 운동은 수험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안 한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라도 거르고 꾸준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운동을 거부한다. 요령을 피워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령을 피운 만큼 몸은 좋아지지 않는다. 우직하게 꾸준해야 운동의 성과를 챙겨간다.

자세를 잡는 것도 내가 제일 모른다. 나는 정자세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지만 남이 볼땐 허우적대는 애처로운 몸짓일 뿐이다. 그래서 혼자 하기보다는 같이 하는게 좋다. 나에게 한없이 관대한 나보다 객관적인 남이 봐주는게 훨씬 정확하고, 나를 제어하기도 훨씬 쉽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비단 수험과 운동에만 해당하는 것인가 싶다. 늘 우리는 올바른 길을 알고 있다. 그 길만 가면 된다. 하지만 그게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쉽고 편한길로 가려 한다. 당장 앞서나가는 것 같지만 그 길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우직함과 꾸준함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3. 방학 때 공부를 마치고 나오면 새벽 1시쯤 된다. 운동에 재미를 붙인 나는 그 때마다 하루에 2시간씩 여름 밤 거리를 걸었다. 걸으면, 자동차로 움직일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침에 내다팔 물건을 부지런히 준비하는 시장의 상인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셔터를 내린 후 후미진 골목으로 사라지는 알바생, 24시 카페에서 불빛을 밝히며 책장을 넘기는 고시생, 지하보도에 신문지로 자리를 잡고 처연한 표정으로 잠에 든 노숙인. 이런 풍경들을 보고 나면 아름다운 것도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더러운 것도 그리 더러워 보이지가 않는다.

요새 만나는 사람마다 열심히 살자고 인사를 건넨다. 쉬운 요령과 꼼수가 판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이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에게 조금 덜 관대하고, 세상의 위를 쳐다보기 전에 주변부터 둘러보고,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탐하기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산다면, 세상이 지금보단 조금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4. 아버지가 떠난지 1년이 되어간다. 운명의 장난처럼 왜 안 좋은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지. 아버지가 떠난 후 아버지를 비롯한, 내가 의지하고 나를 떠받치던 세계들이 하나둘 무너져 갔다. 하지만 지나온 1년 가까운 시간을 하나 둘 되짚어보면, 그렇게 흘러갔어야 하고,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옳고 그른 문제도 아니다. 모든 것이 운명인 것 같지만 실은 전부 나의 책임이 따르는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정말 법학이 제일 어려운 것 같지만 그보다 백만배는 어려운게 사람이다.

혼자 있는 엄마에게 내 얘기를 할 때는 일부러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엄마는 잠자코 듣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모운아, 사람 사는게 다 그런거란다. 그럼에도 한번쯤 살아볼만 한게 인생이지."


여전히 녹록치 않다. 하지만 한가지 좋은 소식은 혼란속에 빠져있던 나의 세계들이 이제 다시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단 한 줄기 희망만이라도 있다면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좌고우면 하지 말고, 이번학기도 우직하게, 열심히.


2019.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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