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운 Feb 03. 2022

로스쿨에 대한 환상과 수험생이 살아가는 이유

영화 <소울>

※ 말미에 영화 #소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누군가 졸업 이후 계획을 물어보면, 나는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이유와 다짐을 속사포처럼 5분 넘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 때의 나는 약간의 소명의식도 있었다. 늘 혓바닥이 길면 의심해 봐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은 거창한 이유로 시작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로스쿨에 온 이유는 그저 군대에 가는 것이 너무 막막해서였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숨가쁘게 학생회를 마치고 나서 한숨 돌려보니, 어느새 동기들은 전역했고 나는 미필인 채 대학교 4학년이 되어버렸다. 군대에 다녀오면 바로 1년도 채 안되어 졸업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그게 가장 큰 동인이었다. 나머지 거창한 이유들은 그저 포장지처럼 덕지덕지 갖다 붙인 이유에 불과했다.


로스쿨에 들어와서, 나는 정말 환상만 보고 떠들었음을, 조금씩 어렵사리 깨달았다. 나는 로스쿨에 가는 가장 큰 목적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자유롭게 이것저것 하고 싶어서'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변호사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철저히 '의뢰인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직업이었다. 세상 사람들도 변호사에게 기대하는 것 역시 정확히 동일했다.


로스쿨은 자유롭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교차로라기 보다는 차라리 선명한 외길이었다. 로스쿨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도 쉽지 않았고, 오직 허용된 탈출구는 그저 경주마처럼 변호사시험만 바라보며 눈코뜰새없이 달리는 것 뿐이었다. 한번 실수하거나 넘어지면 따라잡기도 어려웠고, 미처 되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시험에 관계없는 것을 하면 욕을 먹었고 바보라 손가락질 했다.


실무수습을 나갔을 때, 나보다 두 살 많은 변호사님은 법원 방청을 시켜주었다. 변호사님이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원고의 장애를 이용해 돈을 빼먹은 피고측의 방청석에서는 육두문자와 손가락질이 날아왔다. 건조한 판례 주문 한 줄에 의뢰인의 목숨같은 집과 예적금이 넘어갔다. 그는 모질게 마음먹고 의뢰인의 삶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기 위한 셈을 빨리 해야 버틸 수 있다고 했다. 학교에선 시험 너머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눈코뜰새없이 공부해서 시험 합격하면 해방이니 지금은 참고 견디라는 것뿐이었다.


법원 방청을 다녀온 날, 마음이 모질지도 못하고 셈도 빠르지 못한 나는,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은 듯 입학 전 변호사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환상을 잃었다. 꿈과 목표의식은 모두 사라지고, 그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깝고, 오직 이 방법 뿐이라서, 영혼없이 펜을 잡을 뿐이었다.


근 두 달 간, 내게 시험이 끝난 후의 세상은 구원이라기보다는 무력감에 가까웠다. 로스쿨 3년간 나에게는 멈춰있었던 세상은, 그사이 너무나 많이 변해있었다. 3년간 세상 사는데 별로 필요하지 않은 시험 치는 기술만 익혔던 나는 휴대폰 사기를 당할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백면서생이 되었다. 변호사라는 선명한 외길은 여전히 자신없고 희미하기만 하다. 그저 모두가 나간 빈 집에서 빨래하고 청소하며, 의미없는 하루하루를 흘려 보내고 있다.




영화 <소울>에서 '조'는 음악만이 유일한 구원이자 삶의 목적이라 철썩같이 믿지만, 정작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실패한 인생이라 자책한다. <소울>에서 삶의 불꽃을 잃은 사람들은 '상처입은 영혼'이 되어 스스로 모래성을 쌓고 그 안에 갇히게 된다. '상처입은 영혼'이 되어버린 '22'를 구원한 건, '조'의 음악같은 거창한 목표도 아니고, 일상 속 바람 한 줄기가 건네준 단풍잎 홀씨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늘 스쿠터를 타고 등교하던 길이었다. 독립문 뒷산에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었다. 생각해보니 한 때 나의 일상이었던 이 등굣길은, 봄날에는 개나리꽃이 무척 아름다웠던 길이었다.


악다구니만 가득해 시험이 끝난 후 도저히 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로스쿨 시절의 일기장을 폈다. 나의 불행은 도무지 잡히지도 않을 것 같았던, 거대한 목표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순간을 살지 않고 과정을 살아간다. 거대한 목표와 순간이 없더라도, 삶의 과정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고 아름답다. 나는 한 번도 극장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봄에 핀 개나리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렸던 소중한 무언가를 이제야 찾은 기분이다.



2021. 3. 25

매거진의 이전글 버티는 몸을 만든다는 것과 버티며 사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