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따끈따끈 갓 지어진 쌀밥은 하루의 피로를 녹여내고,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보약과도 다름없는 특별한 것이다
하지만 자취를 갓 시작한 내가 직접 그리고 매일매일 갓 지은 밥을 할 자신은 없었기에
즉석밥이 그 자리를 대신해 주었고, 즉석밥의 다양함과 풍미를 종류별로 맛보고 느낄 수가 있었다.
6개월이 지나고 자취의 설렘이 끝나고 나니, 생활비라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동안 시켜먹었던 즉석밥과 앞으로 사 먹어야 할 즉석밥을 계산해 본 후
앞으로 그냥 내가 쌀과 전기밥솥을 사서 해 먹을 때의 금액을 비교해 보니,
역시나 직접 해 먹는 밥이 훨~~ 씬 싸다는 것을 금방 도출해 내곤 조그마한 전기밥솥 하나를 바로 주문하였다.
그런데 막상 밥솥을 사고 나니, 생각보다 집에서 밥해먹을 일이 별로 없어서
한번 밥을 하고 나면 다음에 다시 먹을 때까지 남은 밥들이 누렇게 뜬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냥 바로 냉동실에 밥을 소분해서 넣으면 될 것을 이때는 무슨 고집이었는지 얼마 안 되는 양이라 왠지 금방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거 같다.
퇴근하고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밥솥을 열면 비어있거나 누런 밥뿐이니,
다시 밥을 하려고 하면 또 시간이 걸려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가 즉석밥 하나를 냉큼 사 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사는 밥솥이라 적당히 저렴한 가격대를 샀더니 보온시간이 길어지면 표면에 있는 밥알들이 점점 딱딱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래저래 집에서 먹는 갓 지어먹는 밥에 대한 로망은 점차 사라지고 현실과 타협할 무렵,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진작 바꾸고 싶은 전기밥솥이었으나, 성능에는 문제가 없고 잘 작동이 되니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었으나,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 이번에는 쫌 괜찮은 제품의 밥솥으로 사보자'
어떤 브랜드로 살지 결정은 했으나, 몇 인용으로 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것이었다.
이때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때그때 해먹는 갓 지은 쌀밥'의 로망이었기에 해먹을 양만 지어 먹기에 알맞은 3인용 밥솥을 선택하였다.
퇴근하지 마자 바로 쌀을 안치고 옷 갈아입고 씻고 이래저래 하면 바로 지은 밥을 먹겠지?
라는 순수한(바보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퇴근하고 매일매일 밥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고, 얼마 되지 않아 최대한 많은 양의 밥을 지어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게 되었다.
퇴근하고 냉동실에서 꺼낸 소분된 밥을 전자레인지로 3분가량 돌리면 세상 맛있는 밥을 바로 먹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산 '3인용' 밥솥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소분해서 얼려놓으면 되니, 밥을 많이 해서 냉동실에 넣으면 되는데, 나의 이 작고 귀여운 밥솥은 3~4개 정도의 소분된 밥의 양이 나오니 생각보다 자주 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밥맛만큼은 기가 막히게 좋으니, 김을 내뿜으면서 열심히 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