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
쌓여있는 설거지와 곧 무너져 내릴 듯한 빨래 바구니는 그 본연의 자리에서 스스로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으며 나의 온전한 휴식을 방해한다.
누가 집에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온 신경이 거기로 쏠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편한 자세로 소파에 누워있는 나는, 누가 봐도 주말을 제대로 만끽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머릿속으로는 세상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일단 빨래부터 세탁기에 넣어볼까? 그리고 식기세척기도 돌리자, 그리고 뒷베란다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 좀 내놓을까? 치워놓고 쉬면 개운하고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내 귀찮아져 재미있는 채널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아든다.
치우는 게 귀찮아서 안 하기로 했다면 철저히 외면해서 마음 편히 푹 쉬어야 하는데 나의 시야 몇 가닥이 주방과 세탁기가 있는 뒷베란다에 걸쳐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라는 이럴 때 쓰인다면 참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상시에 조금씩 바로바로 치우면 될 텐데,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하여 싱크대 속에 온갖 그릇들이 나와 서로 안부를 묻게 만든 후에야 겨우겨우 설거지를 하게 된다. (이마저도 식기세척기가 해주고 있다.)
정 거슬려서 보기가 싫다면 벌떡 일어나 빨래 바구니를 들고 세탁기에 후다닥 넣어버리고 돌리면 되는 것인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경만 쓰고 있는 나 자신까지 합쳐지면
주말의 고요하고 적막한 나의 집이 고뇌의 현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주말을 보내기 위하여 수요일부터 바지런을 떨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컵, 샐러드를 먹다 나둔 포크, 요거트를 담아 먹었던 조그만 그릇 등 빠지는 거 없이
샅샅이 훑어 모아 식기세척기에 살포시 포개어 놓고 개운하게 설거지되라는 마음을 담아 고온 스팀과 함께 세척기의 전원 버튼을 눌러준다.
목요일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다. 일단 집에 들어간 순간 나의 육신은 소파와 혼연일체가 돼서 거실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려 중력이 몇 배가 되어버리지만 그래도 완벽한 주말을 위해 미리 현관 쪽으로 분류해서 빼둔 재활용 쓰레기들을 가지고 내려간다.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완벽한 주말을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금요일에는 출근했을 때 입었던 옷까지 세탁기에 챙겨 넣어 빨래를 돌린다. 분명 모든 빨래를 챙겨서 세탁기에 넣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선가 나오는 수건 하나 양말 한 짝에 다음을 기약하며 낙오된 빨래들은 빨래통에 따로 챙겨둔다.
굵직(?)한 집안일을 평일에 미리 끝내고 나면 완벽한 주말을 한걸음 더 가까워진다.
치울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며 갈등하는 나는 없어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파의 틈바구니 안에서 노곤해져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방바닥은 언제 마지막에 닦고 안 닦았었는지 날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주방 싱크대 근처 바닥에 조그만 양념 자국이 보이는 듯하다. 작은방 베란다에 정리안 된 캠핑용품이 갑자기 떠오른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젓곤 텔레비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그래도 설거지, 빨래, 재활용 쓰레기보다는 덜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문득 누워있던 소파의 커버가 보인다. 아까 빨래 돌릴 때 같이 돌릴 것을 그랬나.
나의 완벽한(?) 주말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아마도 집에서 벗어나야만 완벽한 주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