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미루고 미루던 욕실 청소를 아주 말끔하게 해치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무장갑, 베이킹소다, 욕실 세제, 자동 브러시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제법 고되기도 했지만 말끔하게 묵은 때가 벗겨지는 모습을 보며 점점 일에 신명이 날 때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 업무이야기로 두어 번 정도 통화하다가 마지막에 스치듯 이야기했던 이야기가 그녀의 맘에 꽤나 들었나 보다. 그녀와 나 사이에 조그마한 공감대 하나를 만들어졌고 나 역시 마지막 통화쯤에는 꽤나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하고 사소한 이야기 하나가 그녀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었나 보다.
그녀의 가벼운 목소리톤에 통화가 금방 끝날 거라 예상하고는 고무장갑을 마저 벗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쪼그려 앉아있었다. 욕실 안 시계를 보았다. 벌써 10분이 넘어간다.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저려오는 다리를 쭉 펴고 일어나서 고무장갑을 마저 벗는다. 나에 대한 호의가 가득 담겨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기에 욕실 문을 닫고 나와 소파에 편하게 앉아서 그녀의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그녀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이 계속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2시간 가까운 통화를 끝내고 나니, 어느새 저녁 10시가 넘어있다. 부랴부랴 샤워를 하면서 미처 못 끝낸 욕실 바닥이 못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널브러진 장갑과 세제들도 치워버렸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다가 그녀가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이야기는 특별한 건 없었다. 잔잔하고 평화로웠으며 누구나에게나 있을법한 이야기였다.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그녀는 내가 퇴근 후에 주로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녀의 평범한 대화 속에 감추어져 있는 외로움이 나의 일상으로 넘어오는 듯했다. 나는 그냥 얼버부리고 말았다.
통화가 길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녀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그랬을까? 저녁을 든든하게 채웠는데도 왠지 허기가 져서 냉장고 문 한켠을 열어보았다. 따끈한 국물이 마시고 싶었다. 이럴 때는 순식간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만들 수 있는 계란국이 제격이다. 금방 만들어진 뜨끈뜨끈한 계란국을 한 입 떠먹으며 속을 데운다.
그녀는 왜 나에게 전화를 했을까? 그리고 왜 나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까?
단순한 통화 한번 가지고(그러기에는 꽤나 길었던..) 엄청나게 크게 의미 부여를 한다거나, 그녀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녀는 외로웠던 거 같다. 두어 번 반복된 통화 끝에 가볍게 던진 이야기에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문득 나의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외롭더라도 너무 길게 통화는 하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