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어느 날의 일기
나는 만보를 걷기로 하였다.
온몸이 땀이 주룩주룩 흐를 만큼 격렬하지도 않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감각을 일깨울 만큼의 집중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엄청난 근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민첩성이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오래 걸었다고 하여 다른 운동처럼 신체적인 능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시간을 운동하더라도 다소 효율이 떨어지고,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만보를 걷기로 했다.
퇴근을 하고 휴대폰 어플에 기록된 걸음걸이를 확인하니, 3천보를 살짝 넘는다.
남은 7천보를 부지런히 걸어주어야 한다.
퇴근을 하고 저녁을 가볍게 차려먹고 회사에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8시를 넘어가고 있다. 치우려 했던 설거지를 미룬 채 운동화를 바삐 고쳐 신고 집을 나선다.
서둘러 나왔지만 마음은 즐겁다. 저녁 공기가 제법 더워 땀이 흘러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다.
땀으로 온몸을 샤워할 만큼 격렬한 강도높은 운동도 해보았고
유연하지 못한 뻣뻣한 몸의 고통을 참아가며 요가와 필라테스도 해보았다.
힘든 만큼 성과도 있었지만 그만큼 내 마음에 운동이라는 허들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오기반 끈기반으로 해내는 운동들은 그 순간만큼은 성취감을 주었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이 버거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도 지속되었다.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과 강도높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니, 체중계의 눈금이 내려가지 않으면 어떤 운동이라도 지속되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낸 장애물과 조급함은 너무나도 나에게 당연했기 때문에 다시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몸무게는 역대 최대수치라는 기록을 달성해 나가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를 먹으니 운동으로는 더 이상 살이 빠지지 않는 체질로 바뀌었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운동을 다시 시작을 하려고 해도 무조건 힘들어 보이는 운동만을 골라서 시작하려 했다. 그리고 시작도 하기 전에 제풀에 지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던 나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날씬했던 적이 있었고, 운동을 할 때 결과에 상관없이 즐거웠던 적도 많았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몰아갔나 싶었지만 결국 나를 몰아간 건 나 자신이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소화를 시킬 겸 바람을 쐴 겸 한 걸음씩 두 걸음씩 걸음을 보태었다. 걷다가 힘들다 싶으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걸음에 신이 나는 날에는 동네 두어 바퀴를 더 돌다가 들어갔다.
그렇게 앞자리가 7로 시작했던 몸무게는 다시 6으로 바뀌었다. 배가 들어가고 옷이 편해졌다.(언젠가는 5로 내려가겠지)
이렇게 조금씩 보태서 걸으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다시 잡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만보 걷기>
예전처럼 강도 높은 운동도 아니고 체중계의 눈금이 내려갈 만큼의 운동량도 아니다. 마음에 큰 장벽에 세워지지도 않는다.
그냥 밥을 먹고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고 점심을 먹든 저녁을 먹든 소화시킬 겸 한걸음 두 걸음 걸어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오늘 이렇게 만보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