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
엄마는 겨울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겨울의 찬바람이 좋다고 하셨다.
코끝을 아리게 하는 매서운 바람을 엄마는 그저 시원하다며 좋다고 하셨다.
어릴 적 거침없이 달려드는 바닷바람을 마주하며 자랐던 당신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귀 끝을 스치는 동장군의 기세가 고향 바다의 짠내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셨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차가운 바람에 맞설 자신이 없는 나는 온기 가능한 방 안에서
새언니가 챙겨준 귤을 까먹으며 포근한 담요 속으로 몸을 깊숙이 돌돌 말아본다.
엄마는 무언가 답답한지 창문을 가리고 있는 잡동사니를 치우고 있었다.
높은 창문은 야속하게 엄마의 손끝에 겨우 닿을 듯 말 듯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도 거들어줘야겠다 싶어 일어나서 다가서니, 텔레비전 소리가 요란스럽게 내 귀에 박힌다.
잠이 들었나 보다.
먹다 남은 귤 몇 개를 집어 들고 외투 하나를 걸친다. 미뤄왔던 일을 오늘에서야 마침내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엄마가 떠나고 나서 엄마는 과연 어디에 있을지,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항상 헤매고 있었다. 엄마의 부재에 익숙해져 간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걷잡을 수 없게 휘몰아치면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에 휘청이곤 했다.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수석에 간소하게 챙긴 간식들과 귤들을 올려놓는다. 허전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배가 고파서였을까? 챙겨 나온 과자와 귤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조수석에서 늘 간식을 챙기던 엄마와 그 옆에서 운전을 하면서 넙죽 받아먹었던 기억이 났다. 콧등이 시큰해진다.
꽤 오래전에 내가 찍어준 엄마의 사진이 영락공원 추모관에 붙어 있다. 언제였을까? 내가 찍어준 그 사진의 그날도 겨울이었다. 나와 산책하던 길에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날의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겨울이 좋다고 하셨다.
발끝을 세워야만 겨우 손끝이 닿는 엄마의 사진에 말을 걸어보았다.
그동안 얼마나 엄마를 찾아다녔는지, 그리고 어딜 가도 엄마는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와 속상한 마음을 다 토해내듯이 말했다.
엄마가 치료를 받았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대학병원 병실의 침대 위였다. 가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이해가지 않던 행동을 하던 엄마는 치료를 받으면서 점차 좋아졌고, 보조기구가 필요하긴 했지만 제법 내딛는 발걸음에 점차 힘이 실렸었다. 엄마는 생기 있는 목소리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조금씩 엄마는 회복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잠시 차를 멈추고 병원으로 향하였다.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와 빨간 옷을 입은 산타가 병원 로비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타가 맞이하는 사람 중에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나는 불청객이었다. 누군가 갑자기 내 팔을 잡고 여기서 뭐하고 계시냐고 하면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엄마를 찾으러 왔다고 하면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할게 분명하였다.
더 이상 엄마를 찾아 헤매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엄마가 없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엄마를 찾기 위해 엄마가 없다는 걸 확인하러 나는 오늘 나선 것이다.
크게 변화한 건 없지만 내 기억 속의 병원은 아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실감이 난다.
엄마는 더 이상 여기에 없구나.
곧바로 몸을 돌려 엄마와 산책을 했던 공원을 향했다. 가는 길목에 엄마가 지냈었던 요양병원이 보인다.
잠잠했던 바람이 몰아친다. 내 마음을 휘저어 버린다. 퇴근 후 말도 없이 찾아간 적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너무나 즐거워했었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모습이 참으로 좋았다.
그래, 엄마는 여기에 계시질 않아.
날이 어두워진다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가보기로 했다
엄마와 함께 살려고 마련했던 집보다 더 오래 같이 지낸 원룸에 도착했다
이곳 원룸에서 두 번의 겨울을 엄마와 함께했었다
마당이 있는 당신의 집보다 조그마한 나의 원룸이 편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의 겨울에는 엄마가 없다
막연한 그리움을 간직하려 하기도 했었다. 굳이 엄마가 더 이상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그리움은 집착이 되어 엄마의 부재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도 엄마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보내드려야 했다. 그래야 엄마를 찾아 헤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엄마를 그리워 하는게 아니라, 더 이상 내 옆에 없는 엄마를 그리워 하고 싶었다.
이제야 엄마가 내 옆에 더 이상 없다는 게 실감이 난다.
엄마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