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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Mar 17. 2023

영화 관람객은 결국 방관자일까?

미카일 하네케 <퍼니게임 (1997)>



미카엘 하네케의 1997년도 작 <퍼니 게임>은 두 남자가 부유층에 속하는 가족들을 게임이라는 명목하에 일방적인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대부분은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실제로도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던 도중 관람객들이 자리를 이탈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떻게 모든 관람객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선사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보아야 할 영화라고 언급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의 암묵적인 룰을 무시하면서 진행이 되는데, 그중 하나가 관객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부각하고 극으로 참여시킨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특히 두 남자 중 하나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장면이 네 번 정도 등장하며 심지어는 관객을 향해 대화를 걸면서 관객이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공범, 즉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사람으로 전환시킨다. 영화 속 세계를 따로 독립된 세계로 인식하며 영화를 수용하던 관객들에게 현실과 가상의 세계의 벽을 무너뜨리면서 영화는 관객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폭력들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폭력을 저지르는 인물들의 배경이나 동기 혹은 그럴듯한 목적을 관객에게 오픈해 주 지 않아 관객이 인물에 진심으로 동요하지 않게 의도적으로 연출됨으로써 관객들이 폭력에서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관객에게 있어 불편한 감정을 극대화하고 무력감을 선사한다.


극 중 안나가 총을 집어 범인을 쏴서 죽이는 장면에만 이 영화는 폭력이 자극적이고 가시적이게 묘사된다. 남자들이 가족들에게 향하는 폭력은 사운드나 정황상으로 표현될 뿐 단 한 번도 시각 적이게 드러난 적이 없다. 그렇기에 폭력에 갈증을 느낀 관객들과 복수를 응원하는 관객들에게 유일하게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조차도 감독의 재량을 활용해 리모컨을 사용하여 범인의 죽음 이전으로 돌려놓는다. 관객들이 느꼈던 쾌감과 희열의 감정들을 전부 무기력과 회의감으로 바꾸어놓는다. 이런 관객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극적이게 묘사되는 폭력에 익숙하며 폭력을 쾌감으로 소비하는 관객들을 비판한다.


무비판적으로 영화 장치가 설치된 대로 따라가는 습성을 지닌 관객들을 배반하는 맥거핀이 등장하면서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재현하기도 한다. 영화 초반 부 소년이 요트에 칼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이 칼이 후반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마지 막에 안나가 요트에 묶였을 때 칼은 결정적인 도구로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 기법들을 활용하면 서 감독은 관객의 기대와 희망을 손쉽게 뒤집어 버린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선사하면서 영화에서 남용되는 폭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관객들을, 역설적으로 폭력을 통해서 비판하고 성찰의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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