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도깨비와 은하수 마을
산골짝 천지 개벽
밤이 낮이 되는 천지 개벽,
칠흑 같은 밤을 전등이 밝히더니
이제 AI 문명을 띄운다.
엎드려 숙제하느라
석유 몇 방울 담은 호롱불 심지 자꾸 솟구치면
아침 세수는 코 연통 청소,
까만 그을음이 대야에 둥둥 떠다녔다.
전등이 방안을 밝히자
방안은 환해서 더러워지고
전기요금에 위아랫방 구멍 뚫어 전등 하나,
방의 경계가 사라졌다.
삼십 리 등굣길은 걸어서 두 시간,
긴 골짝 초입 마을까지 오던 버스가
골짝 마을을 하나씩 잡아먹으며 당겨 오다가
어느 날 마을 버스 정류장이 만들어지던 날,
버스 환영 잔치는 생애의 천지개벽,
이제 고속기차가, 비행기가 쉬어가며 걷던 길을 지나치며 스쳐간다.
준비가 끝나면 집 나서던 길을
찻시간에 하겁지겁 헐떡인다, 천지개벽.
아무 아버지 전화 받으세요.
이장네 방송 소리에
서울 아들네에서 전화 왔구나 모두 소식 아는 천지개벽.
마을 사람들 모두 들을 수 있게 여보세요, 안들려를 반복하다가 지쳐
전화 교환수를 불러 전화 끊어졌다고 소리치며
다시 이어지는 통화,
그래 잘 있어로 끝나는 전화,
간첩 신고할 겸 정부에서 마을마다 놓아 준 전화.
소리가 줄을 타고 날라다니는 귀신,
라디오 소리만 듣다가
제 목소리 녹음이 들려올 때
혼이 빠지는 개벽.
지게 지고
호올불을 켜던 기나긴 인류 역사,
어느 날
순간의 천지 개벽.
시간과 공간이 종이처럼 납작해지는
천지개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