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현 Feb 15. 2022

개인적 독백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 권위의 사전적 정의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재롱을 부리는 것을 보아 인간은 본디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댄다. 

 권위라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무형적인 것일 수도 있다. 비싼 차, 좋은 집, 누군가의 연봉을 웃도는 명품가방이나 시계가, 또 누군가에게는 학위, 픙부한 경험, 화려한 커리어가  배경이 되는 사회다. 

 누구나 원하지만 갖기 쉽지 않다. 할 일 없이 인터넷을 방황하면 적잖이 보게 되는 소식이 있다. 학력이나 경력 위조, 사금융을 끼고 풀 할부로 시원하게 지른 스포츠 카, 짝퉁 명품백, 표절로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람.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나름대로의 권위를 챙긴다. 


  그렇다면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자본? 희소성? 역사에 기록될 업적? 


 사실 내 짧은 인문학적 지식으로는 딱 잘라서 말할 순 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본질을 벗어난 권위는 가치가 없다. 비싼 차와 고급시계의 본질은 그 사람의 능력을 대변한다. 자동차 유지비가 직장인의 월급만큼 나와도 생활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본가이거나 고액의 연봉을 받는 노동자일 것이다. 요즘 세상에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디서나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시계의 본질은 시간을 보는 것을 떠나, 시계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사치품으로써 소비하는 것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옥탑방에 사는 내가 롤렉스를 차고 포르셰를 타고 가로수길로 향한다. 그리고 롤렉스를 자랑하기 위해 창문을 열고 왼손을 내민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나를 보고 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끝장나는 금수저로 생각할 것이다. 권위가 생긴 것이다.  단단하고 뿌리가 깊은 권위가 아닌 누구나 쉽게 부실수 있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판넬 같은 권위.  물론 몇몇의 사람들은 그 나약한 권위를 뿌리 삼아 줄기를 길러내기도 한다.

 무형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교하게 박사학위를 위조한들, 나는 그만한 지식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그것으로 사회에서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내 자아까지 속일 수는 없다. 

 도핑을 하거나 심판을 매수해 승리를 얻고 메달을 얻을 순 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총량을 겨루는 스포츠 경기에서 약과 돈으로 1등을 해봤자 그 사람이 이룬 것이 아닌, 약과 돈이 가져다준 금메달은 이미 본질을 잃은 채 색이 바랠 것이다.



ps. 만약 운동선수가 금메달이라는 그 단순한 물건을 얻기 위해 경기에 출전한다면 할 말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개인적 독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