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관하여
자유. 숨 막히게 아름다운 단어. 인간이 많은 피를 흘리게 하는 단어다. 자유는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과연 나는 자유로울까? 다른 사람들은 자유로울까?
나를 하루 종일 괴롭히는 생각이다. 질문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유라는 단어는 참으로 이질적이다. 자유주의의 사회에 살고 있는 내 가이런 말을 한다고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사족으로 단다.
사실 자유의 앞에는 다양한 관형사가 붙는다. 경제적, 정치적, 지적, 등등. 그렇다면 저 단어가 나오기까지 역사를 거슬러 가보자.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한반도에 스며들었다. 지적 자유를 지니지 못한 채, 노인이 된 사람이 아직까지 살아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지적 자유가 보장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외에 것들을 포함하는 시민적 자유를 들여다보면, 직업선택의 자유, 노동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등 수많은 자유가 있다. 언듯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원하는 것이 계속 바뀌고, 생기는 게 인간의 마음이기에 인간은 평생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얘기 하고 싶은 본론은 과거의 족쇄는 무겁고 눈에 보인다면, 현재의 족쇄는 무게가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족쇄를 몇 개나 차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과거가 현재보다 낫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그저 투명한 족쇄를 차고 우리는 자유롭다고 자위질 하는 것이 전부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적어도 네가 가고 싶은 곳은 갈 수 있잖아."
반만 맞는 말이다. 먼저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하루 24시간이다. 그 하루를 써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 한들, 시간이 없으면 그 어디로 떠날 수 없다. 심지어 경제적 자유도, 시간적 자유도 없는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적어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잖아."
이것도 반만 맞는 말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서른을 앞둔 내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운동을 시작할 순 없다. 취미론 할 순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네가 가진 것도 못 가졌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보다 못 가진 사람을 보고 자존감을 느끼는 사람보다 잘난 사람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자유는 마음속 파랑새가 아닐까?
P.S 자유가 마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