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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 Mar 27. 2022

나에게도 숨기기 어려운 일이 있다.

회사 동료도 아는 나의 문구 사랑 이야기

회사 생활이 특히 고되게 느껴졌던 시절에 쓴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남자 친구, 릴보이 그리고 문구류.' 혹시 나중에 남자 친구가 일기를 읽게 되는 날이 올까 봐 적지 않았던 사실이 있는데, 세 가지 중 8할을 차지했던 건 단연코 문구류였다. 아마 내가 참새로 태어났더라면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저 멀리, 골목 깊숙이 꽁꽁 숨어있는 방앗간까지 기어이 다녀오는 참새였을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특히 회사 동료와의 관계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목 공포증이라든가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두려워서는 아니고, 일로 만난 사이에 굳이 나의 호불호를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팀원에게 평소 좋아하지 않던 다른 부서 사람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일 처리가 미흡해서 화가 많이 났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더니 "어머, 스리 님이 회사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의외네요. 전혀 몰랐어요." 이런 반응이 돌아왔을 정도다.


그런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 한 가지 감추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문구 사랑이다.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그런 데에 자꾸 돈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미 많은 동료가 알고 있는 것 같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내 자리에 와봤거나 나와 화장실 또는 미팅에서 만났더라면 모르는 게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내 자리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모니터 한쪽에는 메모지를 붙일 수 있는 메모홀더를 붙여두었다. 캐릭터가 그려진 귀여운 홀더. 메모지는 흔히 쓰는 포스트잇과 각종 캐릭터 메모지를 돌아가며 쓴다. 마음 같아서는 캐릭터 메모지만 쓰고 싶지만 캐릭터가 그려진 부분을 빼면 메모할 공간이 부족해서 그렇다.


어느 날 찍었던 사진들. 오른쪽 라이언 앞 보라색 곰돌이가 케어 베어다.

모니터 받침대에는 파리바게뜨 음료수를 먹고 모은 캐릭터 음료수 뚜껑들이 있다. 라이언, 미니언즈, 네오. 캐릭터 얼굴 모양을 한 뚜껑을 준다고 음료 값이 천 원은 더 비싼 것 같은데, 기꺼이 지불한다. 이들 옆에는 케어 베어의 곰돌이 한 마리를 놓아두었다.


포키 칫솔을 보고, 동료가 포키 손톱깎이를 선물해 줬던 날. 오예!

기둥에는 호빵맨 자석을 붙였고, 사용하는 칫솔은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포키다. 포키, 우디, 마블의 블랙 팬서 순서로 칫솔을 교체하며 사용했다.


왼쪽은 쉬고 싶은 마음을 소심하게나마 표현하려고 샀던 거다. 웃프다.

계절마다 마우스 패드를 교체하는 것을 회사 생활의 즐거움으로 여기고, 당연히 검은색 같은 평범한 마우스 패드는 사용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업무 다이어리, 필기구를 제공하지만 거의 사용하는 일이 없다. 직접 다이어리, 수첩, 볼펜을 구입하고, 노트북이 있음에도 이 친구들을 미팅에 자주 들고 다닌다. 이밖에도 내 자리에 붙어 있는 이름표, 노트북에는 고심해 고른 스티커들을 붙여두었다. 그러니 어쩌면 나의 문구 사랑을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회사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도 있다. 그건 내가 회사에  문구류는 실제 내가 가진 것의 아주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나는 문구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귀여움이 지구까지는 구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세상은 구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문구류를 포함해 작고 귀여운 것들은 대게  좋아한다는 말이다. 문구류 말고도 좋아해서 자주 사고 모으는 물건에는 파우치, 책갈피, 키친 크로스,  매트 등이 있다. 책갈피가  거기서 거기가 아닌지, 키친 크로스는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번 편은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앞으로 하나씩 주제로 들고 올 거니까. 문구와 귀여운 물건들의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하려고 한다. 그러니 다음 편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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