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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Luna el Sol Mar 22. 2024

나는 엄마에게 화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엄마에게 화내지 않기로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와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내가 살고 있던 지방 도시가 아닌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면서 점점 더 엄마와 멀어졌다.


취직과 함께 시작된 자취생활 11년, 뒤돌아보니 그 기간이 엄마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시간이다.


상경 직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나중에는 석 달에 한 번,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는 명절에만 겨우 본가에 내려갔다. 그렇게 오랜만에 서로를 볼 때면 애틋함이 컸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일 년에 겨우 며칠 정도라 불화가 생길 틈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30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다음 해 바로 첫째를 임신했다. 계속 일을 하고 싶었고 출산 후 출산 후 최대한 빠르게 업무에 복귀하기 위해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는 '풍요롭지 않은 형편 때문에 마음껏 누리게 해주지 못한 것'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기에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어쩌면 '절대 애는 안 낳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딸이 애를 낳아 손주를 얻은 기쁨이 너무 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는 날부터 엄마와 함께 지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엄마와 나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제발, 이렇게 좀 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해!!!!"

나는 또 엄마에게 하루 종일 짜증을 냈다.


핑계는 많았다.

나는 원래 (특히 가족에게만) 짜증이 많은 편이다.

임신 후 호르몬의 변화로 짜증이 많아졌다.

엄마와 나의 생활습관은 물론 육아관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눈에 거슬렸다.

그걸 핑계로 온갖 트집을 잡아 짜증을 내고 또 짜증을 냈다.

나중에는 엄마에게 내는 짜증을 합리화하기까지 했다.


"어 정말 너도?"

"말도 마, 엄마랑 싸우지 않는 딸은 없을걸? 같이 살면 더 심하지~"


친구들은 내가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 거다. 속상했을 또는 자괴감에 빠졌을 나를 위한 위로였겠지.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 뾰족한 돌덩이를 둔 것처럼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웠다.

그러다 문득 엄마를 대하고 있는 나의 태도가 소름 끼치게 싫어졌다.


"엄마, 도대체 엄마에게만 왜 이렇게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어. 진심으로 미안해"


조금 빨리 깨달았다면 좋았겠지만, 너무나도 오랜 기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화를 내고 난 이후였다. 엄마는 그 많은 짜증을 견뎌내고 오히려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 오히려 나의 짜증이 당연하다고까지 했다.


속 깊은 대화 후에 밀려온 후회와 미안함을 꾹꾹 눌러 담아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 보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다시는 엄마에게 상처 주지 않겠다'라는 지키지 못할 이유는 아니고, 조금이라도 나를 돌아보고 우리 모녀의 관계를 회복시켜 보기 위해서. 그리고 내 딸들과의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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