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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Luna el Sol May 09. 2024

제때 만나 인연이 된 음식

엄마의 음식 _ 표고버섯 밑동 땡초 조림

내가 첫째를 낳고 난 뒤 엄마는 딸과 첫 손녀를 위해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는 다 구해 여러 가지 음식을 해주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표고버섯 밑동 땡초 조림>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요리였는데 어찌나 입맛을 돌게 하는지 거의 매 끼니때마다 먹었던 것 같다.


이 요리는 엄마가 손녀딸의 이유식을 해주기 위해 '표고버섯'을 한 박스 주문하면서 처음 만들게 된 음식이다. 이유식에 표고버섯을 넣어야 할 시기가 다가오자 엄마는 본인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표고버섯을 사기 위해 친구에게 연락했다. 가까운 지인이 표고버섯 농장을 하고 있는 엄마의 친구는 좋은 표고버섯을 살 수 있게 도움을 주면서 덤으로 표고버섯 밑동으로 할 수 있는 요리까지 알려주었다.


표고버섯을 받은 엄마는 윗부분은 손녀의 이유식 재료로 사용하고 밑동은 잘 손질해 조림을 만들어주었다.


엄마에게 레시피를 물었더니,

"와 니가 해먹을라꼬?"

"땡초 다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나?"

라며 평소보다 더 대충 알려준다.


먼저 이 요리를 위해서는 표고버섯, 다시 멸치, 땡초(아주 매운 고추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마늘 그리고 조선간장과 매실 액기스가 필요하다.


조선간장에 진간장을 조금 넣어 다시 멸치와 함께 끓인다. 이때 마늘도 좀 넣어준다. 편마늘도 괜찮고 통마늘도 괜찮다고 한다. 어느 정도 끓고 나면 채 썬 표고버섯 밑동과 다진 고추를 넣고 졸인다. 매실 액기스를 살짝 넣어 맛을 낸다. 그리고  다 졸여지면 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레시피만 봐도 알겠지만 이 조림은 엄청나게 맵고 짜다. 그런데 중독성이 강해 맵찔이인 나도 계속 손이 가게 만들고 식사 때마다 찾게 만든다.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만들어 반찬이 없을 때에도 이 조림과 갓 지은 밥만 있으면 한 그릇 뚝딱하는 건 일도 아니다.


나는 마른 김에 흰밥과 이 조림을 싸서 먹기도 했고, 노른자를 반만 익힌 계란프라이를 비빈 밥 위에 얹어먹기도 했다. 가장 맛있는 건 역시 물에 만 밥에 살짝 올려 먹는 것!


편식이 심했던 어린 시절에 이 음식을 봤다면 아마 손도 안 댔겠지. 첫 애를 낳고 몇 달간 자극적인 음식을 자제하다 입맛을 잃어갈 때쯤 접하게 되어 '바로 이 맛이야!'를 외치며 몇 달간 먹고 또 먹었다.


사람도 어느 시기에 만나느냐에 따라 인연이 될 수 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더니 음식도 마찬가진가보다. 정말 슬픈 건 엄마의 손맛이 날이 갈수록 변해간다는 것이고, 엄마도 전해받은 음식이라 할 때마다 맛이 바뀐다는 거다. 엄마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감사한 일인 줄 알고 먹어야지. 있을 때 잘해야지.



덧,

첫째를 낳고 나서 엄마와 나는 몇 권의 이유식 책을 뒤져가며 다양하고 좋은 재료를 찾아 최고의 이유식을 만드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런데 둘째는 그냥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어 먹이게 되어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둘째야, 탄단지 구성은 완벽했단다.  채소도 정말 다양하게 넣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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