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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Luna el Sol Apr 03. 2024

도저히 한 줄만 먹고 끝낼 수 없는 맛

집 김밥

취직해서 타지에 살고 있는 딸이 고향에 내려갈 때면 엄마는 항상 묻곤 했다.

"뭐 묵고 싶노? 뭐 해놓을까?"

그럴 때면 나는 지겹도록 한 가지 음식만 요청했다.

"김밥!"


임신을 한 딸을 위해 엄마는 또 물었다.

"뭐 묵고 싶노? 뭐 해줄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김밥!"


나는 정말 김밥을 좋아한다. 앞으로 매일 김밥을 먹으라고 해도 질리는 기색 없이 먹어낼 자신이 있다.


그래서 혼자 살 때도 김밥을 참 많이 먹었다. 편의점 삼각김밥부터 김밥 전문점에서 파는 가장 저렴한 기본 김밥, 참치 김밥, 묵은지 김밥, 소고기 김밥 등등등


그런데 사 먹는 김밥들은 김밥을 먹고 싶은 마음을 달래줄 뿐 나의 입맛을 100%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나를 완벽하게 만족시켜 주는 김밥은 오로지 엄마가 직접 싼 집 김밥뿐이다.


김밥을 요청하기 미안하게 (단무지와 우엉만 제외하고) 모든 재료를 정성껏 손질하고 볶는다. 그래서 엄마의 김밥은 사 먹는 김밥에 비해 기름지다. 그리고 엄마 김밥에선 아주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엄마 김밥의 킥은 '김치'다. 엄마 김밥의 맛을 대충이라도 살려보기 위해 엄마와의 대화를 적어보자면,


"엄마 김밥쌀 때 김치 있지?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먼저 김치를 씻어가~그다음에 미림 쬐끔, 설탕 쬐끔 넣어 그래야 신맛이 없거든,

그리고 다시다 쪼오끔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양념을 그래가꼬 기름에 달달 볶는 기지"


김치 하나도 그냥 넣는 법이 없으니 맛이 없을 리가 있나. 나는 이 김치를 너무 좋아해서 엄마가 김밥을 싸고 있으면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프라이팬에 남아 있는 김치를 입에 넣기 바쁘다. 분명 딱 하나만 먹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물이 먹고 싶을 만큼 많이 먹어버린다. 그러고 나서도 김밥이 완성되면 김밥에 이 김치를 얹어 먹는다. 아마 이 김치만 있다면 사 먹는 김밥도 맛이 더 풍성해질 거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엄마 김밥을 좋아하면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놓지 않았다는 거다. 소위 말하는 맛집의 핫한 음식 사진은 사진은 사진첩에 넘쳐나는데, 소중한 엄마 음식은 자주 기록해두지 않았다는 게 아쉽고 미안했다.


그래도 나는 인스타그램을 샅샅이 뒤져서 기어코 엄마의 김밥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 무려 10여 년 전에 찍은 사진이다. 생김새를 보니 요즘의 엄마 김밥과는 또 달랐다. 요즘에는 채 썰어서 볶은 당근을 꽤 많이 넣고 계란 지단도 채를 썰어서 한가득 넣는다. 엄마 김밥이 나에게 주는 행복함은 그대로지만 세월 따라 엄마의 김밥은 조금씩 변해왔나 보다.



10년 전에 찍은 김밥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몇 주 전부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집에 내려가자마자 김밥을 싸달라고 했다.

집에서 만든 김밥, 지금 또 먹고 싶다.

근데 엄마, 제발 귀리밥으로 김밥 만들지 마세요.

#일상 #먹스타그램


나는 엄마 김밥 사진만 봐도 맛을 느낄 수 있다. 엄마 김밥 만의 짭짤한 간, 고소한 맛, 오독오독한 식감. 도저히 한 줄만 먹고 끝낼 수 없는 그 맛. 최소 세 줄을 먹고 나서 아 배불러~라며 또 한 조각 더 입에 넣을 수밖에 없는 그 맛. 아무래도 오늘 저녁엔 김밥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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