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디자이너의 다이어리 #6
브랜드 디자이너의 다이어리 #6
오늘은 브랜드 디자인의 꽃, 로고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좀 풀어보고자 한다.
예전에 읽은 글 중에서 '네이밍'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간단히 보여주는 예시가 있었다.
'김덕춘' 막걸리 vs '이유나' 막걸리
김덕춘 막걸리는 왠지 오랜 전통을 이어오신 장인분께서 자신만의 비법 공정을 통해 만든 전통 막걸리일 것 같은데 반해 이유나 막걸리는 참신한 형태나 맛이 기대되는 MZ세대 취향의 막걸리일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 드라마에는 항상 등장하는 클리셰가 있다. 가련한 주인공, 못된 부잣집, 출생의 비밀 등 진부하지만 놀랍게도 시청률이 꽤 나오는 걸 보면 클리셰가 잘 먹힌다는 방증이다.
로고 디자인에도 잘 먹히는 클리셰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김덕춘 막걸리의 로고는 네이밍 자체에서 풍기는 '장인'의 느낌을 고수하여 네이밍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 한자를 통한 '고전'의 무드나 '전통'의 느낌을 낼 수 있는 붓글씨 등으로 표현하고 다소 차분한 느낌의 색상과 톤앤매너를 BI에 적용하여 대중적인 타겟층을 공략할 것 같고,
이유나 막걸리는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원소주'처럼) 산세리프 형태의 깔끔한 로고타입 + 유니크한 그래픽 등 참신한 '개성'을 강조하고 특정 타깃층의 '취향'을 반영하여 톡톡 튀는 감도의 색상과 인스타그래머블한 톤앤매너가 BI로 어울릴 것 같다.
예시와 같이 두 막걸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이미 네이밍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이미 얼추 형성되어져 버린 BI를 어떻게 표현할지 스타트를 끊는 것이 로고라고 본다. 오히려 마케팅을 위해 김덕춘 막걸리를 이유나 막걸리와 같은 디자인 결로 만들 수도 있고, 거꾸로 이유나 막걸리에 전통의 느낌을 추가할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 그전에 더 어울리는 네이밍으로 바꾸겠지만...)
요지는 네이밍에서 비롯되는 BI조차도 로고를 어떻게 제작하느냐에 따라 완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디테일한 요소들 예를 들어 로고타입(logotype)만 봐도
영문 vs 한글 (Eng vs. Kor)
고딕 vs 명조 (Sans-serif vs. Serif)
대/소문자 (Letter Cases)
너비의 좁고 넓음 (Condensed vs. Extended)
자간 (Kerning)
색상 (Color)
등에 따라 전달하고자(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방향이 달라진다.
로고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얼굴이자 기준이 되는 핵심 요소.
때문에 모든 디자인 어플리케이션은 로고를 기반으로 기획/제작되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모든 디자인 어플리케이션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인데 너무 당연한 말인 거 같지만 실제론 부서가 많은 회사의 경우 팔로업이 덜 되어서 혹은 '이런 디자인이 요즘 트렌드라서' / '이런 마케팅 방향이 잘 먹혀서' 등의 이유로 로고 디자인 즉, BI와 상당히 상이한 결의 기획을 볼 때가 종종 있다.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한다고 더 맛있어지는 게 아닌 거처럼 로고를(BI를) 필두로 한 맥락이 정말 중요한데 때문에 브랜드 디자인 부서와 유관부서와는 (특히 광고/마케팅) 충돌이 잦다. (김덕춘 브랜드 로고를 이유나 막걸리 광고나 패키지에 적용한다고 상상해보자...)
어떤 브랜드는 로고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시안 1,000개를 만들었다고도 하던데, 그 정도로 많은 고민 끝에 나온 로고는 분명 BI와 가치/철학 등을 꾹꾹 눌러 담아 제작되었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면티를 샤넬 티셔츠로 바꿀 수도 있고 똑같은 면티를 슈프림 로고로 힙해 보이게 할 수도 있는 화룡정점이자 디자인의 A to Z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브랜드 디자인의 꽃인 로고 디자인을 가장 어려워 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업무로 꼽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게 아닐까?